위로가기 버튼

“나갔다 하면 다 죽어 돌아온다”⋯꿀벌 떼죽음 부른 ‘4월의 저주’

단정민 기자
등록일 2026-04-21 13:48 게재일 2026-04-22 5면
스크랩버튼
이상기후·진드기·중동전쟁 ‘삼중고’에 신음하는 양봉가
Second alt text
이상기후와 진드기, 중동사태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양봉업자들이 삼중고를 겪고 있다. 지난 16일 오전 포항시 북구 청하면 양봉장에서 임현수 씨(60)가 벌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지난 16일 오전 포항시 북구 청하면의 한 양봉장. 30년 베테랑 양봉인 임현수 씨(60)가 벌통 하나를 열었다. 

평소라면 ‘잉잉’ 대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와야 할 벌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입구엔 날개가 쪼그라든 벌 몇 마리만 힘없이 바닥을 기어 다녔다. 

임 씨는 “이게 다 이상기후가 설계한 거대한 덫”이라며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4~6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은 80%에 달한다. 북대서양 해수면 온도가 변하는 ‘양의 삼극자 패턴’이 만든 결과다. 

이 ‘비정상적인 초여름’은 꿀벌들에게 치명적인 유혹이 됐다. 낮 기온이 27도까지 치솟아 채밀에 나섰던 벌들이 밤사이 기온이 급락하면 근육이 굳어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폐사한다. 

임 씨는 “따뜻한 날씨에 속아 나갔다가 길에서 죽는 ‘객사(客死)’ 꼴”이라고 했다.

생태계의 균열은 천적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이른 고온은 ‘꿀벌응애(진드기)’의 번식 시계를 한 달이나 앞당겼다. 응애가 매개하는 ‘날개불구바이러스’ 탓에 날지 못하는 기형 벌이 급증했다. 

여기에 중동 사태 장기화로 석유화학 계열 원자재 물가가 폭등하며 농민의 숨통을 조인다. 나무 벌통(83%↑), 꿀병(100%↑) 등 자재 가격은 1~2년 사이 두 배로 뛰었다. 

임 씨는 “자재비만 ‘더블’이 됐다. 꿀 한 병 팔아봐야 벌통 하나 못 산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이상기후가 설계한 구조적 재난’으로 규정한다. 

정철의 국립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3P 화분 매개 중점연구소장)는 “2~3월 저온 뒤 4월 이상고온이 닥치면 겨울벌이 조기 육아 노동에 투입돼 급격히 노화한다”며 “수명이 단축된 벌이 귀환하지 못하고 폐사하는 ‘총감(總減) 현상’이 핵심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특히 고장 난 개화 시계가 양봉 산업의 근간을 흔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나리·벚꽃 등이 한꺼번에 피는 ‘계절적 불일치’로 채밀 기간이 반토막 났다”며 “전국을 돌며 네 차례 채밀하던 이동 양봉이 이제는 두 번도 힘든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천적 응애의 번식으로 ‘날개불구바이러스’가 창궐한 것은 생태계 면역력이 무너진 증거”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성주 참외, 안동 딸기 등은 꿀벌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다”며 “화분매개에 의존하는 농업 가치가 연간 6조 원을 상회하는 만큼 이를 식탁 안보와 지역 경제를 뒤흔드는 중대한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이미지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