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진드기·중동전쟁 ‘삼중고’에 신음하는 양봉가
지난 16일 오전 포항시 북구 청하면의 한 양봉장. 30년 베테랑 양봉인 임현수 씨(60)가 벌통 하나를 열었다.
평소라면 ‘잉잉’ 대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와야 할 벌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입구엔 날개가 쪼그라든 벌 몇 마리만 힘없이 바닥을 기어 다녔다.
임 씨는 “이게 다 이상기후가 설계한 거대한 덫”이라며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4~6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은 80%에 달한다. 북대서양 해수면 온도가 변하는 ‘양의 삼극자 패턴’이 만든 결과다.
이 ‘비정상적인 초여름’은 꿀벌들에게 치명적인 유혹이 됐다. 낮 기온이 27도까지 치솟아 채밀에 나섰던 벌들이 밤사이 기온이 급락하면 근육이 굳어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폐사한다.
임 씨는 “따뜻한 날씨에 속아 나갔다가 길에서 죽는 ‘객사(客死)’ 꼴”이라고 했다.
생태계의 균열은 천적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이른 고온은 ‘꿀벌응애(진드기)’의 번식 시계를 한 달이나 앞당겼다. 응애가 매개하는 ‘날개불구바이러스’ 탓에 날지 못하는 기형 벌이 급증했다.
여기에 중동 사태 장기화로 석유화학 계열 원자재 물가가 폭등하며 농민의 숨통을 조인다. 나무 벌통(83%↑), 꿀병(100%↑) 등 자재 가격은 1~2년 사이 두 배로 뛰었다.
임 씨는 “자재비만 ‘더블’이 됐다. 꿀 한 병 팔아봐야 벌통 하나 못 산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이상기후가 설계한 구조적 재난’으로 규정한다.
정철의 국립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3P 화분 매개 중점연구소장)는 “2~3월 저온 뒤 4월 이상고온이 닥치면 겨울벌이 조기 육아 노동에 투입돼 급격히 노화한다”며 “수명이 단축된 벌이 귀환하지 못하고 폐사하는 ‘총감(總減) 현상’이 핵심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특히 고장 난 개화 시계가 양봉 산업의 근간을 흔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나리·벚꽃 등이 한꺼번에 피는 ‘계절적 불일치’로 채밀 기간이 반토막 났다”며 “전국을 돌며 네 차례 채밀하던 이동 양봉이 이제는 두 번도 힘든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천적 응애의 번식으로 ‘날개불구바이러스’가 창궐한 것은 생태계 면역력이 무너진 증거”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성주 참외, 안동 딸기 등은 꿀벌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다”며 “화분매개에 의존하는 농업 가치가 연간 6조 원을 상회하는 만큼 이를 식탁 안보와 지역 경제를 뒤흔드는 중대한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