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맞는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동빈문화창고·영일대 해수욕장 일원 철의 인문 전시회·기업 협업 프로젝트 시민 직접 ‘쇠질’ 참여·체험 행사 마련 스틸아트컬렉션 작가 14명 해변 전시 소설가 김훈, 조각가 이웅배·정현 한글 타이포그래피 안상수 디자이너 철학자 이섭 등 예술계 거장 참여 눈길
‘철(鐵·steel)’을 예술적 매체로 활용한 국내 유일 순수 문화예술 축제인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의 올해 주제는 ‘빛과 쇠’(소설가 김훈 작명)다. 지난 25일 오후 4시 동빈문화창고1969에서 막을 올렸다.
14회차를 맞는 이번 페스티벌은 재단법인 포항문화재단이 소설가 김훈, 한글 타이포그래피 안상수 디자이너, 철학자 이섭, 조각가 이웅배·정현 등 인문 예술 거장들과 협력해 빛과 철의 관계를 깊숙이 탐구하는 컨셉으로 열고 있다. 올해 페스티벌은 ‘스틸 아트’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철이 예술인 도시’로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11월 23일까지 복합문화공간 동빈문화창고1969와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포항을 ‘철의 도시’를 넘어 ‘예술이 된 철의 도시’로 재정의하기 위한 실험적 시도들로 채워진다.
지난 2012년 시작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은 ‘철의 도시’ 포항의 정체성을 담아 특성화한 국내 유일의 ‘철 전문 예술행사’다. 문화공간에서 열리는 다른 도시의 미술제와 달리 도시 전체를 무대 삼아 열리는 ‘도시 예술제’로 자리매김해왔다. 지난 13년 동안 포항 곳곳에 자리 잡은 230점의 스틸아트 전시작품은 도심 속 ‘스틸 뮤지엄’을 형성하며 도시에 새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동안은 조각가 중심이었으나, 올해는 참여의 면면이 많이 달라졌다. 당대의 문예철(文藝哲) 대표작가들이 컬렉티브로 철의 인문을 대신 읽어주는 전시를 열고, 철강기업이 기술을 예술과 견주어 보는 협업 프로젝트는 물론 시민이 직접 ‘쇠질’에 참여하는 참여·체험행사를 여는 등 철판이 한층 달구어지고 넓어진다. 주축이었던 철조각은 지난 13년간 꾸려온 스틸아트 컬렉션 200여점을 대표하는 작가 14명을 꼽아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라는 열정형·회심형 해변 전시로 다시 온다.
△전시1 ‘철, 읽다’
동빈문화창고1969에 마련된 기존 철조각 전시에서 한 걸음 나아가, 철의 인문학적 의미를 재해석하는 공간이다. 안상수(한글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이섭(철학·예술기획), 정현(조각), 이웅배(조각), 김훈(문학) 등 5인의 ‘문예철 컬렉티브’가 포항을 ‘읽고’, ‘묻고’, ‘세우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구현한다.
안상수 작가는 글(文)·꼴(圖)·얼(像)을 조합해 포항의 정체성을 시각화한다. 정현 조각가는 땅속에서 세상을 받쳐온 철의 흔적을 드러낸다. 김훈 소설가는 ‘빛과 쇠’로 포항이 걸어온 문명사적 길을 서사시로 풀어낸다. 이섭 철학자는 철과 인간의 공존 방식을 질문하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웅배 조각가는 포항 사람의 일상에 스민 철의 숨결을 조각으로 재현한다.
△전시2 ‘철예술, 보다’
포항시가 13년간 수집한 스틸아트 200여 점 중 대표작가 14인의 최신 작품을 엄선해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선보이는 야외 전시다. 참여 작가인 강대영 김병철 김상균 김연 김태수 노해율 모준석 박성찬 박은생 신옥주 안재홍 이기칠 정정주 최일 작가는 ‘새로 포항, 함께 포항’을 주제로 현대조각의 다채로운 경향을 집약하며, 포항의 해안 풍경과 어우러진 철조각의 도시적 의미를 조명한다.
포항의 핫 스팟인 영일대해수욕장에서의 전시는, 포항의 해경(sea-scape)과 도경(city-scape), 그리고 예경(art-scape)의 ‘신 삼경(三景)’을 보고 즐기는 와유(臥遊)의 기회를 넉넉하게 제공한다. 포스코 제1고로가 또 하나의 작품으로 보이는 곳이기도 한 해수욕장 전시장에서의 전시는 펄펄 끓던 철의 용해와 철 조각가의 열정으로 포항 컬렉션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는 한편, 포항 스틸아트, 나아가 한국 현대조각의 나아갈 길을 내다보고자 한다.
△전시3 ‘철기술, 펼치다’
‘철기술, 펼치다’는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을 펼치는 철강기업과 예술가의 협업 프로젝트다. 동빈문화창고1969 이벤트홀 입구로 들어서면 시민 워크숍으로 제작한 해와 달 그림이 전시되고, 중앙에는 포항 철강기업 동국제강과 제일테크노스가 제작한 ‘쇠의 숲’이 관객을 맞이한다.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의 독특한 요소 중 하나는 포항 철강기업들이 작품 전시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포항 철강기업은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첫 행사에서부터 예술로 참여해왔는데, 이번에는 그 참여를 기술 본연으로 고도화해 포항의 문화뿐만 아니라 산업, 경제의 에너지로 쓰자고 제안한다.
이웅배 작가와 동국제강은 H형강을 활용한 시민 친화적 조형물 ‘공동체’ 연작을, 이섭 작가와 제일테크노스는 레이저 커팅 기술로 제작한 ‘포항십경철병(浦項十景鐵屛)’을 선보인다.
‘아트펜스’는 예술과 기술의 협업으로 외진 공간을 찰진 공간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철강산업단지에서 제일 가까운 학교 중 하나인 대송초등학교, 밋밋한 등굣길을 씽씽한 마실길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예술가(정미솔·이향희)의 창의와 대송초 전교생 33명, 그리고 포스코의 기술지원이 함께 했다.
△시민 참여·체험
‘포항 철예술 시민기획단’은 일정한 교육과 현장 리서치를 거친 시민들이 직접 포항시 공공장소에 설치된 철 예술 작품을 큐레이션해 문화, 교육, 관광의 도시자원으로 제안한다. 함께 ‘쇠맛’을 보고 직접 ‘쇠질’을 해보면서 철과 함께 사는 고유한 포항 라이프스타일을 모색하는 시민 참여·체험 프로그램이다.
작가와의 워크숍, 꿈틀로 공방 워크숍, 철철 공방워크숍을 통한 다양한 공예 체험을 제공하는 ‘철철공작소’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도시 경관, 문화자원과 함께 철예술을 탐방하는 ‘철철 아트투어’는 도슨트투어, 스탬프 투어, 지역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전시장에서 맛보지 못한 역동적인 철 예술 도시 포항을 유람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포럼, 철로 철학하다
철을 매개로 한 철학적 담론의 장인 ‘쇠와 인간의 관계’, ‘포항의 문화적 전환’ 등의 주제강연과 토론이 11월 8일 오후 2시 동빈문화창고1969 2층 라운지에서 진행된다.
이상모 포항문화재단 대표이사는 “‘포항에서 쇠가 갖는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쇠를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활동 중심축으로 전환이 포항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가?’ 등 오랜 사유에서 비롯된 이번 페스티벌은 철의 물성을 예술과 기술, 시민 참여로 확장하며, 포항을 ‘살아있는 철 예술 도시’로 재탄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글·사진/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