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객원기자의 ‘클래식 노트’
서양권 국가에서 생활하다 보면 클래식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한국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에게 클래식은 단순히 소비하는 고급 예술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필수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클래식 음악은 자연스럽고 열린 문화로 뿌리내려 있으며, 예술을 지켜 나가는 것은 공동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배경 속에서 후원 문화도 활발하다. 개인, 가족,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후원이 일반화돼 있으며, 1달러 소액 기부부터 수십만 달러 고액 후원까지 누구나 기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다. 후원자는 단순히 기부자가 아니라 공연의 공동 제작자로 여겨지며, 많은 공연장은 후원자 전용 좌석, 연주자와의 만남, 리허설 참관, 후원자 디너 같은 기회를 제공해 문화적 자부심을 느끼도록 한다.
클래식은 서양에서 하우스 콘서트, 요양원, 실버아파트 같은 생활 공간에서도 만날 수 있는 일상의 음악이다. 미국의 “Groupmuse”처럼 거실에서 옹기종기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살롱 콘서트 플랫폼도 활성화돼 있다. 장애 접근성, 음료 지참 가능 여부, 입장료 같은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며 누구나 편안하게 음악을 즐기게 한다. 독일은 요양원에 이동형 클래식 팀이 찾아가 연주와 해설을 들려주고 환자의 정서 안정과 사회성 회복, 인지력 자극까지 돕는다. 이런 프로그램은 문화부와 지방정부 지원으로 매년 수백 회 이상 운영된다.
반면 한국에서 클래식은 오랫동안 배워야 하는 예술, 정제된 공간에서 감상하는 고급 경험으로 여겨져 왔다.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는 있지만 아직 접근성, 교육, 감상 태도에서 구조적 차이가 뚜렷하다. 공연장은 수도권에 집중돼 서울·경기·인천이 전체 공연의 73%를 차지하며, 영남권은 14%, 호남권은 7%, 충청·강원·제주를 모두 합쳐도 6%에 불과하다. 지방에서는 기획 공연 자체가 많지 않다 보니 관객들은 누가 연주하는지, 프로그램이 얼마나 친숙한지에 따라 공연장을 찾게 된다. 클래식은 여전히 전공자나 엘리트의 예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박수 타이밍, 드레스 코드, 예절에 대한 부담이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한다. 어렵고 딱딱한 장르라는 고정관념도 관객층을 좁히는 원인 중 하나다.
이러한 차이는 역사적 뿌리와 교육 시스템에서 비롯됐다. 서양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애초에 자국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고, 귀족과 시민 사회의 일상에서 출발해 대중화되었다. 반면 한국은 20세기 이후 서양 교육과 함께 클래식이 소개되며 배워야 하는 예술, 지적 훈련의 일부로 자리매김했다. 교육 역시 서양은 학교 안에서 악기 수업과 오케스트라 활동 기회가 풍부해 음악이 생활 속 활동으로 스며들었다. 한국도 최근 학교 프로그램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기술 연마와 평가 중심의 구조가 강하고, 고가의 레슨비는 클래식을 일반 대중과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는 분명히 시작되고 있다. 광주에서는 가정형 하우스 콘서트가 열리고, 예술의전당은 야외 무대에서 무료 클래식 공연을 열어 우연히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음악을 선사한다. 지역 도서관이나 복지관에서 소규모 클래식 공연이 마련되며 새로운 관객층이 생기고 있다. 앞으로 이런 흐름을 더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문화 예산이 안정적으로 확보되고, 공공기관과 예술인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자리 잡아야 한다. 지역 기반의 생활형 공연과 학교 감상 교육 강화, 소액 후원 문화 활성화 같은 실질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클래식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삶 속 예술로 뿌리내릴 수 있다. 예술은 연주자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시민이 함께 지켜나가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