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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 위에 선 무대, 오늘의 셰익스피어

등록일 2025-06-16 18:55 게재일 2025-06-1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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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 단상 (文化人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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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기 문학박사·호산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초빙교수

셰익스피어의 고전이 무대 위에 오를 때마다 우리는 되묻는다. “오늘, 이 무대에서 ‘고전’은 어떻게 살아 숨 쉬는가?” 포항시립극단은 지난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포항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선보인 ‘모르페섬의 한여름밤의 꿈’으로 그 질문에 설득력 있게 답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고전의 재현을 넘어,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시간을 연극적 감각으로 해석해냈다. 특히 박장렬 연출은 원작의 ‘꿈과 사랑의 혼란’을 오늘의 언어와 이미지로 세련되게 재구성하며,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무대는 간결했다. 오히려 비워낸 만큼 상상력이 채워졌다. 조명은 공간의 정서를 이끌고, 음악은 장면과 장면 사이의 감정을 유려하게 이어 붙였다. 특히 숲을 형상화한 조명과 안개 효과는 몽환적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무대를 꿈결처럼 감쌌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이 환상적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했고, 관객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조용히 머물렀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각색의 과감함’이었다. 원작의 복잡한 구조를 간결하게 줄이고, 등장인물 간 관계를 정리함으로써 극적 밀도를 높였다. 그 과정에서 일부 장면 연결이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구성의 명확성과 속도감은 오히려 관객의 집중을 끌어올렸다. 꿈과 현실, 인간과 요정의 세계가 빠른 호흡으로 교차하며 연극적 긴장을 유지했다.

관객으로서 느낀 감동은 단지 이야기의 내용에 국한되지 않았다. 연극의 본질이 ‘현장성과 순간성’에 있다면, 이 공연은 그 두 가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배우들의 몸짓과 숨결, 그리고 그 앞에서 집중하며 숨죽이는 관객의 긴장감. 그 팽팽한 긴장과 몰입이 현실과 환상으로 교차하는 순간, 마치 꿈결처럼 무대 위에 펼쳐졌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연기가 크게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도 역의 김민철과 해론 역의 김용운은 중견 배우다운 안정감으로 극의 중심을 든든히 지탱했고, 이흔지와 하지희는 우성주, 황성진과 호흡을 맞추며 청춘의 감성과 순수한 사랑을 투명하게 그려냈다. 요정 역의 최현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환점으로서의 기능을 훌륭히 수행했다. 앙상블 역시 조화로웠다. 장희랑, 김용화, 김순남, 윤도경, 김나윤, 이선아의 협연은 서사에 생명력을 불어 넣으며 극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핵심동력이 되었다.

다만 시립극단으로서의 현실적 한계도 엿보였다. 단원 구성의 불균형, 젊은 연기자 확보의 어려움은 이번 무대에서도 드러났다. 국립극단이나 일부 공립극단이 시행 중인 ‘연수 단원제’와 같은 제도적 보완이 절실해 보인다. 예술성과 감동은 결국 지속 가능한 제작 환경 위에서만 가능하다.

‘모르페섬의 한여름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고전이 결코 낡지 않았음을, 지금 이곳의 무대에서도 여전히 빛날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었다. 아직도 조명이 꺼지고 마지막 배우가 퇴장하던 순간의 잔상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 장면, 그 감정, 그 숨결들이 내 안에서 다시 무대 위로 올라서고 있다. 그리고 그 무대는 관객을 한밤의 환상으로 이끄는 비밀스런 문이 되었다. /백진기 문학박사·호산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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