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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엄다경 시민기자
등록일 2024-10-24 19:46 게재일 2024-10-2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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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10월 연휴를 맞아 여행을 다녀왔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처음 함께하는 해외여행이라 기대가 컸다. 하지만 출발 전부터 공항 주차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인솔하시는 분과 소통이 잘 안 된 면이 있었지만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잠깐 헤매었지만 금방 주차하여 출발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까지 호통을 치며 혼을 낼 때는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조금 야단을 맞았다고 해서 고대하던 여행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치솟는 섭섭한 마음을 누르면서 창밖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파랗고 뭉게구름이 둥실거리는 맑은 가을날이었다. 이런 아름다움을 눈 앞에 두고 마음을 괴로움으로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평소에 즐겨 듣던 명상의 말을 떠올렸다.

말이란 사실 소리의 울림일 뿐인데 상대방의 말에 내가 분별을 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마음이 훨씬 차분해졌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과 견해라는 것이 있으니 상대방이 못 마땅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조금만 상대의 입장과 마음도 헤아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를 읽는다.

“마늘과 꿀을 유리병 속에 넣어 가두어두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깜박 잊었다 한 숟가락 뜨니 마늘도 꿀도 아니다 마늘이고 꿀이다// 당신도 저렇게 오래 내 속에 갇혀 있었으니 형과 질이 변했겠다// 마늘에 緣하고 꿀에 연하고 시간에 연하고 동그란 유리병에 둘러싸여 마늘꿀절임이 된 것처럼// 내 속의 당신은 참 당신이 아닐 것이다 변해버린 맛이 묘하다// 또 한 숟가락 나의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 줄 마늘꿀절임 같은 당신을,//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 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다”

(조용미 시 ‘가을밤’)

매운 생마늘이 꿀에 잠겨 두 해가 지나니 형과 질이 바뀐 마늘꿀절임이 되었다고 한다. 그 부대낌이면 외골수 같이 톡 쏘아대는 성질도 한풀 죽어 유순해지는 모양이다. 그러는 동안 동그란 유리병 안에서 참아내야 하는 인내 또한 만만치 않았으리라. 아무리 뾰족하게 들이대어도 같이 쏘아대지 않고 그저 묵묵히 품어주는 꿀의 시간이 그렇게 마늘꿀절임을 만들었으리.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토록 무던한 절임이 되는 건 참으로 어렵지 않을까. 서로 섞여 살다보면 마늘도 꿀도 아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마늘과 꿀이 아닌 것도 아니다. 서로 인연한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형과 질마저 버릴 만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을 연하고 오래 묵어가다보면 어느 날 묘한 맛으로 변해버린 서로를 보게 될 것이다.

그래야만 서로를 따뜻하게 데워줄 한 숟가락 꿀절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부디 잊지 말기를. 누구나 나는 달콤한 꿀인줄 알고 살지만 돌아보면 매운 내 톡톡 쏘아대는 마늘이 바로 나였음을.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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