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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람을 그리워 하는 사람이 되자

엄다경 시민기자
등록일 2024-09-26 18:04 게재일 2024-09-2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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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매봉산 바람의 언덕.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유랑을 멈출 수 없는 유목민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정착을 꿈꾸지만 정착하고 나면 또 떠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심리이다. 그래서 그대와 나 사이에는 초원이 필요하다. 양떼를 키우는 그대와 야크를 키우는 나는 늘 새로운 풀밭이 필요하고 함께 머무르기 힘든 존재들이다. 아무리 함께 지내는 부부라고 해도 각자의 풀밭이 필요한 법이다. 좀 멀찍히 떨어져 외면할 듯이 살아야 상대의 장점은 더 좋게 보이고 단점은 좀 작게 보이는 법이다. 너무 밀착되어 있으면 상대를 내 것으로 소유하려고 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를 미워하게 된다. 사랑하고 아끼지만 상대를 위하여 풀밭을 마련하여 그리움을 품고 살자는 시를 읽어 본다.

“그대와 나 사이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그대는 그대의 양떼를 치고, 나는 나의 야크를 치고 살았으면 한다/ 살아가는 것이 양떼와 야크를 치느라 옮겨다니는 허름한 천막임을 알겠으니/ 그대는 그대의 양떼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고/ 나는 나의 야크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자/ 오후 세시 지금 이곳을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나 되어서/ 그대와 나도 구름 그림자 같은 천막이나 옮겨가며 살자/ 그대의 천막은 나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있고/ 나의 천막은 그대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두고 살자/ 서로가 초원 양편으로 멀찍멀찍이 물러나 외면할 듯이 살자/ 멀고 먼 그대의 천막에서 아스라이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면/ 나도 그때는 그대의 저녁을 마주 대하고 나의 저녁밥을 지을 것이니/ 그립고 그리운 날에 내가 그대를 부르고 부르더라도/ 막막한 초원에 천둥이 구르고 굴러/ 내가 그대를 길게 호명하는 목소리를 그대는 듣지 못하여도 좋다/ 그대와 나 사이 옮겨가는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문태준 시 ‘옮겨가는 초원’)

언젠가 영능력자 분이 쓴 글에 보면 처음 만나서 너무 좋다고 퍽 엎어지는 사람은 후에 자신을 치는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사람을 만났을 때 첫눈에 홀딱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내면에 결핍이 있기 때문이고 상대가 그 결핍을 채워주지 못하면 원수로 돌아선다고 한다.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과 각자 초원 하나씩을 두고 살자. 그의 천막이 보이는 지평선에 눈을 주다가 그가 짓는 저녁 연기에 마음 짠해지는 그리움을 잃어버리지 말자. 우리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시공간이 없이 나아가는 것. 내가 길게 호명하는 목소리를 그대가 듣지 못한데도 어떠랴. 나에게서 나간 마음은 분명 그대에게 가닿을 것인데. 옮겨가는 초원 사이에서 우리 오늘도 사람을 그리워하는 날이 되자.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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