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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인면 서부리에 피어나는 우정의 꽃

민향심 시민기자
등록일 2022-07-17 19:03 게재일 2022-07-1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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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세탁일로 잔뼈 굵은 우영식 씨<br/>손님들을 위한 푸근한 인심 한가득<br/>이웃 바쁠 땐 식당일도 팔 걷고 나서<br/>가족처럼 오순도순 화목한 동네 ‘눈길’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경산시 자인면 우진세탁소 우영식 대표.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에는 흐르는 세월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조그만 상점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다. 항상 변함없이 고향의 역사와 함께하는 사람들. 그들은 자인에서 태어나 자라고 대를 이어 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애향심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곳엔 따스한 정을 나누며 사는 주민들이 있다. 각기 다른 업종의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주인이 없으면 아무나 대리 업무가 가능한 전천후 상점 대표들은 “한국에 이런 도시가 또 있겠냐”며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불러주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이런 탓에 통닭집, 국수집, 슈퍼마켓, 세탁소 등의 점포마다 정해진 주인은 있지만 손님들은 주인이 누구인지 구분을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특히 콩국수와 칼국수의 유명맛집 금성식당과 우진세탁소 두 대표들의 경우가 그렇다.


점심에 손님이 몰리면 우진세탁소 대표 내외는 바로 식당으로 달려가 능숙한 솜씨로 주방일과 손님 응대에 나선다. 얼마나 재빠르게 일을 치러내는지 손님들은 주인을 구별해내지 못할 정도다.


친구들이 모여 이웃이 되고, 동네 사람들이 형제나 친척보다 가깝게 되기까지는 그 중심에 우진세탁소 주인 우영식(69)씨가 있었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날 첫 대면에도 그랬다. 우진세탁소는 외관부터 몇십 년은 넘게 그곳을 지켜온 흔적이 역력했다. 불러도 인기척이 없어 들어가 보니 ‘자리에 없으면 전화 주이소’라고 붙여놓은 안내문 한 장이 전부였다.


상점과 주택을 개방해놓고 지내지 않는 시대에 보기 드문 일이었고, 도심의 세탁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손때 묻은 세탁집기류들이 역사를 뽐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적혀있는 번호로 호출을 하니 주인이 나타났다. “어서 오이소. 뭘 도와드릴까예?” 손님인 줄 알았는지 반갑게 맞아준다.


“자인면 서부리에 우애 좋기로 유명한 우진세탁소 대표가 있다기에 찾아왔습니다. 근데 문을 이렇게 활짝 열어놓고 어디를 다니십니까?”라고 물었다.


“제가 세탁소 한 지가 35년 가까이 되지만 문 열어 놓고 다닌다고 도둑이 든 적은 없습니다”라며 우 대표가 웃었다.


“저 앞 금성식당에 있었어요. 친구 집인데 점심시간에 손님이 몰려 바쁘잖아요. 그래서 집사람이랑 도와주러 갔어요. 며칠씩 집을 비울 일이 없는 한 세탁소 문은 24시간 개방입니다. 손님이 찾아주는 것도 고마운데 오셨다가 문이 닫혔으면 낭패잖아요.”


드문 영업방침이다, 손님을 위해 365일 24시간 완전 개방이라니. 최신식 시설과 기술에 밀려 갈수록 세탁소 운영이 어렵다더니 우 대표의 씩씩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줄어 힘들지만 저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이제 칠십이 낼모레입니다. 세탁업 해서 자식들 가르치고 잘 살았잖아요. 어렵다고 문을 닫으면 손님들이 불편하니 절대 닫을 수 없지요.”


우 대표는 예전에 세탁기가 드물 때는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 속옷을 손으로 깨끗하게 삶아 빨아주기도 했다고 한다. 상견례 가야 하는데 옷이 없다고 하면 양복 맡긴 손님에게 대신 사정을 말하고 옷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래도 그 시절이 참 좋았다”며 미소 짓는 우영식 씨.


자신이 세탁소를 그만두면 지역민들이 불편할 것 같아 문을 닫지 못한다는 우 대표에서 새로운 세탁기기를 권해보았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 아이롱 다리미는 전국 최고의 성능을 가졌어요. 주름이 쫘악 펴지죠. 새 것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때론 손에 익은 옛것이 훨씬 좋은 경우도 많아요.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고요.”


손때 묻은 다리미의 성능을 증명시켜 주려는 듯 연신 다림질을 하는 모습이 아이같이 맑고 곱다.


취재 도중에도 마음은 친구 집 금성식당으로 향하는 우진세탁소 대표에게서 이웃끼리 가족처럼 오순도순 화목하게 살아가는 서부리 주민들의 애틋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십 년 된 아이롱 다리미로 칼날 같이 옷 주름을 잡아주는 우 대표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한여름 더위쯤은 금성식당 콩국수 한 그릇이면 날려버릴 수 있어요.”


/민향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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