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4월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후학들이 건립했으며, 수필 ‘보리’의 일부분 ‘보리, 너는 항상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가 새겨져 있다.
한흑구(韓黑鷗) 선생의 본명은 세광(世光)이며, 1909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105인 사건에 연루돼 미국으로 망명간 아버지를 찾아 20세에 태평양을 건너는 배를 타고 가는데, 검은 갈매기 한 마리가 따라왔다고 한다. 선생은 조국을 잃은 슬픔과 외로움이 마치 한 마리 검은 갈매기의 처지와 흡사하여 스스로를 ‘검은 갈매기(黑鷗)’로 칭했다고 전한다.
1934년 모친이 위독해서 귀국해 평양에 머물면서 시·소설·평론 등을 발표하며 미국문학 번역도 왕성하게 하였다. 1939년 ‘흥사단사건’으로 1년간 투옥됐으며, 광복 후 월남해 서울미군정청에 근무하다가 1948년 포항으로 이주해 1959년 포항수산대학(현 포항대학교 전신) 교수를 역임, 1979년 타계하실 때까지 포항에 살았다. 선생의 묘소는 포항시 북구 흥해읍 죽천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다.
선생의 작품은 1966년 교과서 중학국어 1-1에 ‘보리’, 1975년 중학국어 1-1에 ‘닭울음’이 수록됐을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단 한 줄의 친일문장도 쓰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이며 훌륭한 문학가였다. 문학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포항에 문학과 예술의 정신을 뿌리 내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신 한흑구 선생이 30여 년 동안 포항에 사셨으니 포항사람이나 다름없다.
교과서에서 ‘닭울음’ ‘보리’란 수필을 읽은 적은 있지만 작가가 포항에 살았으며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연산 등산로 초입 고고한 선생의 성품을 닮은 사슴 모양의 ‘한흑구 문학비’가 있는 솔숲에서 우리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희망을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순영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