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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

민향심 시민기자
등록일 2022-02-27 19:04 게재일 2022-02-2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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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 시각장애인협회
동료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 최계순 회장.
지난주 ‘긴 터널을 지나 사랑을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알려진 경북시각장애인연합회 경산지회 최계순(69) 회장을 만났다. 최 회장과의 인연은 장애인 활동봉사를 통해서 맺어졌다.

“어, 오늘은 치마를 입었네요. 어쩜 더 예뻐졌어요”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최 회장의 모습은 시각 중증장애인으로 믿기지 않을 정도다.


명랑, 쾌활, 긍정의 아이콘인 그는 13세 때 후천척으로 시각장애인이 됐다. 고향 강원도에서 대구로 공부를 하러 왔던 게 계기가 돼 경산에 정착해 결혼을 하고 가정도 꾸렸다 장애로 인해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었다.


“빛이 없는 어둠속에 살아보셨나요?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평범한 외모를 보고 우리의 장애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과도하게 꺼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도 보통 사람들처럼 스스로 서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릴 혼자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고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 회장은 독거 시각장애 어르신이 밥상을 받아놓고 파리 떼를 감당하지 못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경산지회장직 수락을 결심했다.


하지만 취임해 보니 상황은 열악했다. 자본금은 8만원이 전부. 그때부터 최 회장은 잔 다르크라도 된 듯 개척자의 길을 걷게 됐고, 이웃들에게 호소해 모든 돈으로 쉼터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모이자 먹을거리가 필요해 마트를 찾아다니며 유효기간이 일주일쯤 남은 음식들을 얻어다 식사도 제공했다. 부끄러움도 몰랐고 망설임도 없었다. 이런 최 회장의 활동에 감동한 이웃들은 십시일반 사랑을 나눠줬다.


무급인 회장직이 어느새 15년. 이제는 복지제도가 진화됐고, 예전처럼 모임 장소나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은 줄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또 하나의 간절한 소망이 생겨났다. 자신이 회장에서 물러나기 전에 1천300명 회원들에게 등급별로 각자가 스스로 설 수 있는 교육제도를 마련하는 게 바로 그것. 최 회장은 “이제는 복지에 대한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장애인도 일반인처럼 삶의 목표를 세워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최 회장의 신념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최 회장은 경산에 ‘힐링안마’와 ‘복손안마’로 불리는 시각장애인 자립 활동시설을 만들어 안마교육을 시켰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고 있다. 이제 걸음마에 불과하지만 대기업 두 군데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은 것.


대구에 있는 LG지사와 백화점에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일하는 직원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간단한 안마를 해주는 일은 비록 작은 금액이지만 장애인들이 일을 하고 대가를 지급받는 것이니 그 의미가 크다. 이는 ‘상생복지’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최 회장은 곧 일흔 살이 된다. 그전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안마센터의 바우처 등록과 직업교육을 통한 취업으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싶은 것이다.


구호복지에서 자활복지로의 전환을 꿈꾸는 최 회장은 오늘도 세상을 향해 외친다. “국가와 기관의 보조를 받는 삶이 아닌, 자활교육과 사회동참 기회의 확대로 당당한 생활인으로 서고 싶다”고.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길 빌어본다. /민향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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