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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천 년의 고독… 경주 분황사(芬皇寺)

등록일 2020-02-03 19:32 게재일 2020-02-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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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고 있는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는 경주시 분황로 94-11에 위치해 있다.

인적 없는 분황사에 겨울비가 내린다. 나무들의 젖은 손짓이 기도하듯 평화로운 날, 명절 연휴의 분황사는 더없이 적막하고 스산하다.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하염없이 내린다. 그 너른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불국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3년(634년)에 창건된 분황사는 선덕여왕의 숨결이 살아 있는 절이다. 여왕이 즉위할 때 당나라 태종이 모란꽃 그림을 선물하자, 벌과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향기 없는 꽃임을 눈치 챈 후, 당 태종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에 빗대어 향기 나는(芬) 황제(皇)의 절(寺)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날씨 좋은 어느 봄날 황룡사를 찾았을 때 사람들로 붐볐다. 지혜로운 여왕의 이미지나 원효대사의 깨달음은 바람결에 스치는 언어가 되고 마음은 봄날에 들떴다. 조용한 분황사를 만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분황사에 가면 달아났던 언어가 돌아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절문을 들어서자 국보 제 30호 모전석탑(模塼石塔)이 비를 맞고 서 있다. 신라 최초의 석탑이며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양식이다.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신라로 들어올 당시 중국에는 흙으로 벽돌을 구워 만든 전탑이 유행했다. 하지만 벽돌 만들 환경이 여의치 않던 신라인들은 자연석을 일일이 깎아 모전석탑을 만들었다.

유학파 스님들이 만든 모전석탑은 창건 당시 7층이나 9층으로 추측되지만 임진왜란 때 반이 파손되고 지금은 3층만 남아 있다. 기단의 각 모서리에는 사자상 네 마리가, 일층 네 개의 문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왕상 여덟 구가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모습으로 탑을 지키고 서 있다.

근육질 사내의 분노에 찬 표정과 불끈 쥔 주먹, 금강역사상이라 불리는 인왕상은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사찰이나 불상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탑의 꼭대기까지 연꽃장식을 만들 정도로 절과 탑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던 선덕여왕과 신라인의 불심이 드러나는 걸작이다. 하지만 오늘은 1300여 년을 견뎌온 석탑의 위용조차 무색하다.

두 눈 부라리며 지켜온 사리 장엄구는 백 년 전에 발견되어 지금은 경주박물관에 있다. 그런데도 인왕상은 여전히 분노에 찬 표정을 내려놓지 못한다. 신라인의 불심과 예술혼을 대변하는 특유의 감각들이 살아 있는 저 정교함도 언젠가 흐물흐물 눈물처럼 내려앉을 것이다. 세월은 끊임없이 서 있는 것들을 공격하지 않는가.

담장 너머에는 신라 최고의 사찰, 황룡사가 있었다. 한때 서라벌을 밝혔을 당당한 자태의 두 절은 어디 가고, 모전석탑 홀로 반쪽짜리 키로 담장 너머 황룡사지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탑을 바라보는 나의 한 쪽 가슴도 기운다. 황무지가 되어버린 절터에는 무심히 겨울비만 내리는데….

머지않아 유채꽃 피는 봄이 오고 또 다시 메밀꽃 부케 같은 여름 찾아와 온몸이 아득해지기도 하겠지만,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욱신욱신 슬개골 쑤셔와 스스로의 무게조차 버거울 텐데 저 흔들림 없는 눈빛은 무엇인가? 모전석탑을 지켜온 것은 네 마리의 사자상도, 여덟 구의 인왕상도 아닌 천년의 고독 속에 감추어둔 질긴 그리움인지 모른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출입문 근처를 지키고 서 있는 음료자판기가 눈에 거슬린다. 무채색 분황사 겨울 풍경이 원색의 자판기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잠시 탑의 고독이 와르르 무너진다. 이 비 그치고 나면 다시 관광객들 찾아와 예찬하고 탑은 기품 넘치는 모습으로 누군가의 가슴에 기억되리라.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분황사를 적시는 쓸쓸함 사이로 애잔함이 흐른다. 아무도 없는 절, 마당에 고여 있는 빗물을 조심스레 피해 다니며 모전석탑을 돌고 또 돌아보지만, 천년의 저쪽, 신라의 향기는 까마득히 멀기만 하고 탑은 미동도 않은 채 찬란했던 한때의 시공(時空)을 더듬는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영원히 붉은 꽃은 없다 했던가.

바람에 날리는 겨울비가 내 옷자락을 적신다. 우산을 든 손도 시리다. 나는 작고 아담한 보광전으로 향한다. 빗속에서도 어간문은 활짝 열려 있다. 유난히 커 보이는 약사여래입상이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나를 가만히 지켜본다. 약함을 든 손과 넙적한 얼굴, 너그럽고 수더분한 인상은 여느 부처님보다 편안하다.

그 옛날 희명(希明)이 앞 못 보는 자식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천수대비 부처님 앞에 설 때의 심정을 생각하니, 나의 작은 소원조차 사치다. 빗속을 뚫고 분황사를 달려올 수 있는 건강과 여유가 주어짐에 감사하자. 문 밖에는 겨울비가 소리없이 내리며 갈 길을 막고, 법당은 안온하다.

혼자 법당을 차지하고 비 오는 겨울풍경에 젖어들 때, 젊은 불자 한 분 마당을 가로질러 법당으로 들어선다. 그녀도 나처럼 혼자다. 자리를 비켜주고 나오는 내 뒤로 절을 하는 그녀의 뒷모습이 유난히 간절해 보인다. 모전석탑의 고독한 뒤태를 닮은 그녀의 기도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겨울비가 자꾸 허무감을 부추긴다. 이런 날은 저자거리를 돌며 춤추고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던 원효대사의 유현한 일생이 그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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