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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東京大)생은 왜 바보가 되었는가?

등록일 2019-02-07 19:19 게재일 2019-02-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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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시는 왕에게 박씨를 선물받아 뒤 뜰에 심어 엄청난 크기의 박을 수확합니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서 부숴 버렸네.” 장자가 묻습니다. “아깝다. 그런 희귀한 박을 왜 깨 버린 건가?” 혜시가 답합니다. “박이 쓸모 있으려면 물 떠먹을 만큼 적당한 크기여야지. 저렇게 큰 박은 아무 쓸모가 없어.” 장자가 지적합니다. “어찌 이것을 바다에 띄워 조각배로 활용할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가?” 혜시는 박학능변가로 명가(名家)에 속하는 인물이지요. 명가는 화려한 논리와 수사로 상대의 이론을 굴복시키는 고대 소피스트와 같은 철학자들입니다.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저널리스트는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일본의 지성계과 사회 전반을 발칵 뒤집어 놓은 책이었지요. 정확한 예를 들어가면서 일본 최고의 대학이라는 도쿄대학생들이 얼마나 지성이 결여되어 있는가를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일본은 빠른 근대화로 인해 수직적이고 중앙 집권적인 교육제도가 필요했습니다. 도쿄대는 이런 수준의 인재를 충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첫 번째 대학으로, “관료 교육원”의 역할, 즉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목적을 충실히 무비판적으로 빠르고 탁월하게 제대로 수행해 낼 수 있는 인물들을 대량으로 키워 내기 위한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혜시처럼 세속의 질서에 얽매인 사고 방식으로 살아가는 머리 좋은 사람들을 대량 생산해 내는 것, 그것이 20세기에 걸맞는 교육일지 모릅니다. 정답을 달달 외워 필요할 때 즉각 쏟아내는 방식으로는 조직이나 국가를 어느 정도까지 끌어 올릴 수는 있겠지만 더 이상의 진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럴 듯하다 여기는 집단적 사고방식의 익숙함을 깨부수고 낯설고 두렵고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해도 나만의 고유한 시선,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쏟아내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런 힘이 일류국가를 만드는 저력이고, 위대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특성입니다. 개인의 고품격 문화인 것이지요.

호기심으로 질문하는 능력은 생각의 틀을 넓혀줍니다. 혜시처럼 박이 크다고 폐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장자처럼 건축의 재료나 바닷가 조각배로 사용할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지요. 생명력 가득한 삶은 남들이 추구하는 보편성을 추종하는 삶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진정한 나의 향기, 나 다움, 내 안의 꿈틀거리는 진정한 나를 밖으로 끄집어 내는 용기를 발휘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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