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일 TV에서 태극기 집회를 보도하는 뉴스 영상을 보았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변호인단 중 한 분인 김평우 변호사의 연설이었다. 그 동영상에서 김 변호사는 “우리는 촛불에 지배받는 2등 국민이 아니다”라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촛불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2등 국민인가라는 것을 따지기에 앞서서 필자는 `2등 국민`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싫다. 요즘 일제 말의 문학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데, 이 때 식민지 조선인을 설명하기 위해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가 2등 국민이기 때문이다.
2등 국민(second-class citizen)은 한 국가의 국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으로 차별받는 사람을 의미한다. 2등 국민은 제한된 법적 권리와 시민의 권리 그리고 사회 경제적인 기회를 갖는다. 2등 국민이 직면하게 되는 전형적인 차별은 참정권의 제한 혹은 부재, 공무나 병역의 제한, 언어, 종교, 그리고 교육 등에서의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일제 통치 기간 동안 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일본 국민으로서의 지위와 자격을 갖지 못했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조선인은 병역의 의무가 없었으며, 일본 의회에 대표를 보낼 수 있는 참정권이 없었다. 중일전쟁 발발 후에, 일제는 병역법의 일부 조항을 수정하여 1938년에 특별히 조선인도 병역에 자원할 수 있게 하였고, 1942년에는 조선인도 징병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 참정권 없는 징병의무의 부과에 대해서 일제는 조선인도 명실상부한 천황의 양자의 자격을 갖췄으며 군인이 된다는 것은 특권이라고 선전하였다. 천황의 양자란 곧 2등 국민이란 뜻이다.
2등 국민이라는 용어는 식민지 치하 조선인에 대한 일제의 차별과 수탈이라는 슬픈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 변호사는 2등 국민이라는 단어의 뜻과 유래를 모르고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일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가 연설에서 일제 통치 하의 조선인을 2등 국민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나, 촛불 시민에 대해서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공항에서 여권을 제시할 때만 대한민국 국민일 뿐` 즉 국적만 대한민국이라고 말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김평우 변호사는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국민들을 2등 국민이라고 폄하하였다. 물론 사람에 따라 정치적인 성향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자신만 대한민국의 1등 국민이고,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은 2등 국민으로 보는 것은 상대방을 동등한 정치적 대화와 타협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2등 국민이라는 단어에 차별이나 수탈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정치적인 반대파를 2등 국민으로 부른다면, 그의 마음속에는 정치를 지배와 정복의 수단으로 보고 정치적 패배자는 차별하고 수탈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 필자는 소설 `무정`으로 유명한 작가 이광수에 대해 `대한민국의 엘리트주의`는 뿌리가 깊다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해방 후, 이광수는 3만 명의 조선인 엘리트들을 구하기 위해서 친일을 하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필자는 김 변호사에게서 이런 뿌리 깊은 엘리트주의를 다시 한 번 발견한다. 실제로 그는 한국 사회의 초-엘리트로서 서울대학교 법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1967년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를 하였고, 2006년부터는 서강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상대방을 `2등 국민` 혹은 `개, 돼지`로 보면서 진정한 정치적 협상이나 타협이 가능한 걸까?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해서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믿고 있다면, 둘 사이의 정당한 대화는 불가능하다. 대화는 서로 대등한 상대방들 사이에서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시민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가 제도화되고 생활화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부 사람들의 지독한 `엘리트주의`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건의 한 원인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