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필자가 소속된 단과대학의 교원 워크숍이 있었다. 워크숍에서는 대학의 중장기 발전 계획에 대한 보고와 이미 수행되었던 여러 가지 사업들의 결과 및 개선 사안 보고 등을 발표하고 토론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방학동안 다소 느슨해졌던 학교 일에 대한 긴장감이 되살아난다. 동시에 우리들이 개학을 하면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머릿속에서 작성되는 느낌이 든다.
이번 워크숍의 중요한 내용 중에 하나는 융복합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필자의 소속 대학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융합전공의 필요성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하였는데, 학생의 61%와 교직원의 78%가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학생은 과학+공학+예술, 빅데이터, 법학+경제학+정치학, 문학+역사+철학 등의 순으로 융합전공 개설 선호도를 보였다. 교수들의 경우는 과학+공학+예술, 빅데이터, 문학+역사+철학, 인공지능학, 의료윤리학 등의 순으로 융합전공 개설 선호도를 보였다.
이런 설문조사 결과들은 학생들이 학문의 변화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이며, 교수들이 변화를 선도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학생들은 정보 부족과 제도 변화가 자신에게 미칠 변화 등에 민감하다보니 변화를 싫어하는 쪽이 많은 듯하다. 또한 전공 선호 부분에서도 공학과 예술의 융합이나 빅데이터와 같이 이미 언론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에서는 높은 선호도를 보이지만 요즘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인공지능학이나 의료윤리학 등과 같은 것에서는 교직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응답률을 보였다.
필자는 수업 시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문·이과 통합 교육이 필요하다”는 필자가 쓴 칼럼을 비평해보라고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의 문·이과 통합 교육이 필요하지 않으며, 대학에서도 복수전공을 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대학에서 문·이과 통합이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비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공대나 자연계열 학생들의 경우는 고등학교 때 문과 출신이냐 이과 출신이냐에 따라서도 문·이과 통합 교육에 대한 선호도에 차이가 있다. 문과에서 이과로 교차지원을 한 학생들의 경우는 전공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자기의 경험을 근거로 고등학교 문·이과 통합 교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과 학생의 경우는 수학과 과학 교육의 수준이 떨어지고, 많은 교과목 선택으로 인한 학습 부담을 이유로 문·이과 통합 교육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현재 대학에서 이야기되는 융합 전공의 경우에는 이과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그런 주도권을 쥔 입장에 있는 학생들은 변화가 필요 없다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 또한 공대나 자연계열 학생들은 현재의 전공으로도 상대적으로 쉽게 취업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힘들게 문·이과 통합 교육이나 융·복합 전공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학생들에게 컴퓨터 기반 지식, 예를 들면 빅데이터 처리나 프로그래밍 기술 등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문과 계열 전공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미래에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직업에는 컴퓨터 작업으로 쉽게 할 수 없는 일들, 단순 기술직이 아닌 일들이다. 이것은 모두 인문·사회계열 관련 직업들이다.
필자의 학생들이 보이는 보수적 태도는 올해부터 시작되는 문·이과 통합교육에 대한 중고등학생들의 반응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이런 상황들은 교육과 같이 사회의 미래와 관련된 영역에서는 `수요자 중심 교육`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유의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왜냐하면 이 수요자들은 항상 단기적인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여러 제도 중에서 포퓰리즘(popularism)을 최대한 피해야 할 분야는 교육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