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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보장하는 것이 문화융성 가는 길

등록일 2017-02-01 02:01 게재일 2017-02-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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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며칠 전,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석사 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필자는 2008년 현재 재직 중인 대학교에 들어왔는데, 그 때 이 학생이 필자의 수업 조교를 했다. 결혼한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서로 연락이 끊어졌는데, 다시 연결이 되니 무척 기뻤다. 학생은 전화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자신의 이름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문화계 종사자 중에서 작성자 관점에서 현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목록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작년 10월 12일 한국일보의 최초 보도로 알려지게 됐으며, 작년 12월 말에는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블랙리스트가 있음을 언론에 폭로하기도 하였다. 결정적으로, 올해 1월 21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을 구속함으로써 박근혜 정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했음이 명확해졌다.

다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서명자 594명, 세월호 시국선언을 한 문학인 754명,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한 문화인 6천517명, 그리고 박원순 후보 지지선언을 한 문화인 1천608명 등 총 9천473명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한다. 이중에는 고현정, 정우성, 송강호, 하지원, 김혜수 등과 같은 유명 영화인들도 있고, 필자의 수업 조교였던 학생과 같이 별로 유명하지 않은 문학도도 있다.

이 학생은 자신이 세월호 시국 선언에 서명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선배 문학자들을 따라서 서명한 것밖에 없는데 블랙리스트에 올라 황당했다고 말했다. 학생에 따르면, 자기가 소속된 문학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줄어서 일 년에 네 번이던 문학잡지 발간이 두 번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처럼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사람들에 대한 정부의 응징은 지원금을 줄이는 것이다. 한국 문화예술인들 중 90%는 평균 1천만원 이하 수입을 올릴 정도로 매우 가난하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며 많은 가난한 문화인들이 이에 의존하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정부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자신에게 비판적인 문화인들을 고사시키려고 한 것이다.

필자는 문학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 및 표현의 자유`가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어떤 사회가 민주적인 사회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때도 그 기준은 `언론 및 표현의 자유`이다. 이것은 어떤 정권이 독재의 DNA가 있느냐를 판별할 수 있는 확실한 기준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위정자의 정책이 잘못되었을 때 이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여론들이 있을 수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란 이런 비판이 듣기 싫고, 이를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 중 알게 된 사실은 필자에게 `이 정부는 영구집권이라도 꿈꾸고 있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조차 했다. 왜냐하면 블랙리스트의 명단에 올라간 문화인 다수가 야권의 대표 정치인들에 대해 지지 서명을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근혜 정권이 자기에게 투표하지 않은 49%의 국민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현 정권은 야당 지지자들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자기의 권력을 위협하는 내부의 적들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년 11월 이후부터 각종 언론 매체가 매일 쏟아내고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보도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문화융성`이다. 문화융성과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서로 공존할 수 없다.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할 때 문화도 융성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것의 표현을 존중할 때 진정한 문화의 융성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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