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날씨도 흐리고 어제보다 추워져서 그런지 마음이 우울하다. 바쁠 때는 모르지만, 지금처럼 시간의 여유가 조금 생기면 왠지 마음이 텅 빈 것 같을 때가 있다. 이때,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트화가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기사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필자는 김연아 선수가 첫 시니어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 팬이었기 때문에, 이 기사를 보자 기분이 소위 `업` 되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사를 클릭해 보았다.
기사에 따르면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으로 금메달을 딸 때 신었던 스케이트화를 문화재로 등록한다고 한다. 이처럼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트화가 문화재로 등록될 수 있게 된 것은 제작, 건설된 지 50년이 지나지 않은 사물과 건축물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방안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제작, 건설, 형성된 후 50년이 지난 문화재 중에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만 문화재로 등록하게 되어있는데 이것을 개정한다는 방안이다.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트화가 문화재가 된다는 것은 이 물건 자체의 가치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스케이트화로 상징되는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 획득이 가진 상징적인 가치 때문일 것이다. 보통 피겨스케이팅, 그 중에서도 여성 피겨스케이팅은 동계스포츠의 꽃이라고 말해진다. 이는 다른 경기와 달리 선수의 운동능력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면까지 함께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기에서 우승한다는 것은 선수 개인의 능력의 탁월함뿐만 아니라, 이러한 선수를 길러낸 환경이 높은 문화적 수준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는 2013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여성 싱글 피겨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소치이전까지 러시아는 남자 싱글 피겨에서 몇 차례 금메달을 딴 적이 있다. 알렉세이 야구딘은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예프게니 플루셴코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2010년 벤쿠버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따기도 했지만 여성 싱글 종목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소치올림픽에서는 국내 팬으로부터 `형광나방`이라는 별명을 얻은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석연치 않은 연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김연아와 근소한 차이로 금메달을 땄다.
당시 소트니코바의 금메달 수상에 많은 피겨 팬들은 분노했고, 필자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너무 속상하고 분해서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경기 결과에 대해서 항의하는 글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 당시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많은 뒷말들이 무성했다. 채점자들이 러시아와 가까운 사람들이 많았다던가, 소트니코바 등 다수의 러시아선수가 도핑에 걸리지 않는 금지약물을 복용했다거나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추측들이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려지고 있다. 올림픽 반도핑 위원회에서는 러시아선수들의 광범위한 금지 약물 사용을 적발했고, 그 중에는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트니코바의 경우, 소변샘플을 담은 용기에 훼손 흔적이 있다고 한다. 만약 소트니코바의 도핑 부정행위가 확정이 되면, 그녀의 금메달 수상은 취소된다.
소트니코바가 금메달을 박탈 당하면 김연아 선수는 금메달을 승계 받게 된다. 필자는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받게 돼서 그녀의 경기에 대한 정당한 결과가 주어졌으면 하고 기대를 한다. 단순히 팬으로서의 마음이 아니라, 늘 우리가 결핍감을 느끼는 주어진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김연아 선수에게 우리 사회가 경의를 표하는 것은 선수의 눈부신 업적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인간적 탁월함 때문일 것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은 필자의 마음처럼 어느덧 맑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