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들 다사다난하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지난 병신년(丙申年)은 너무 어지러웠다. 특히 하반기 정치는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맞서 늘 조마조마했다. 내연(內燃)돼 오던 `세월호 7시간`이 표면위로 떠오르고, `정윤회 문건`이 다시 불거졌으며, `최순실 국정농단`이 블랙홀이 돼 나라 전체가 그 속에 빨려들었다. 청와대 핵심 실세들이 줄줄이 수갑을 차고,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왔다. 국정 컨트롤타워가 마비되고 행정부가 흔들렸다. 주말마다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가 열려 외국인들이 재미삼아 구경왔다.
국회는 대통령 탄핵을 가결했고 헌법재판소가 아연 뉴스의 중심에 섰다. 이 와중에 여당은 친박과 비박으로 갈라져 “의리 없는 집단” “책임질 줄 모르는 지도부”라며 서로 비난하다가 마침내 갈라섰다. 연초에는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나눠지더니 연말에는 대통령 탄핵 후 여당까지 분란으로 서로 길을 달리했다. 정치는 이제 마치 조선시대 사색당쟁(四色黨爭)처럼 돼버렸다. 4분5열로 정당이 갈라지면 국민이 혼란스럽다. 각자 제 고집만 세우고 타협을 모르는 외골수 정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더 피곤하다. 국제정세도 시련을 예고한다. 트럼프정부가 시작되면 미국은 `너그러운 맏형`이 아니라 `내 실속만 차리는` 빅브라더가 될 것이란 우려다. 중국도 G2에서 패권자가 되기 위한 행보를 보인다. 미국과 팽팽히 맞서 신냉전시대를 만들고 있으며 앞으로 미·중의 마찰 속에서 군소국가들은 새우등이 터질 것이다. 이미 대만이 등 터지고 있으며, 독립을 원하는 홍콩 상하이 티베트 등이 움직일 것이고, 양국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매우 난해한 고등수학을 풀듯이 외교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국내 정치가 안정된다면 그나마도 힘이 될 것인데 그 또한 혼돈스럽기만 하다.
화합과 협력의 길갈라지고 터지는 국내 정세 속에서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지경이 됐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잃다보니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없다고들 한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국회가 아니라 국해(國害)”라는 말이 나돌았고 많은 국민이 이에 공감하고 있다. 우리보다 민주주의가 훨씬 일찍 도입된 미국은 공화·민주 양당체제로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정치사에 수많은 정당들이 명멸했다. 그것은 정치가 제 자리를 잡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성숙된 민주주의를 가질까. 어떻게 이 사분오열된 국정을 봉합하고 발전의 길로 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게 할까. 새해를 맞는 우리의 화두이다. 미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험 링컨에게서 그 답을 찾아본다. 그가 집권할 무렵 미국은 극도의 혼란속에 있었다. 여론과 언론은 집요하게 그를 비난하기까지 했다. 가난 때문에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고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그는 `상류층의 주류`가 아니었다.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졌고 노예해방론자였던 그는 `남부의 분리 독립`이라는 위기에 봉착했고 마침내 전쟁이 터졌다. 링컨의 북군이 승리했지만 전쟁후유증은 더 심각했다. `남부연합`은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이를 무마시킨 것이 저 유명한 `국립묘지 게티스버그 연설`이다. 남군 북군 구별 없이 명예로운 전사자란 것, 이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자는 것. 대통령 마음대로 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약속이 그 연설속에 담겼다. 링컨은 이미 대선때 자기를 극렬히 비난했던 사람들을 끌어안았었다.
스텐턴을 국방장관에, 체이스를 대법원장에, 슈어트를 특사로 기용했던 것이다. 또 남부군에 가담했거나 부역했다가 체포된 전범들을 모두 사면했다. 집권 공화당원들은 “엄한 처벌”을 주장했지만 링컨은 무보복 통합 화합만이 미 합중국이 나아갈 길이라 설득했다. 그는 줄곧 `게티스버그의 약속`을 지키면서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남부의 반대파들도 대통령의 진심을 믿기에 이른다. 화합과 협치가 이루어낸 결과다.
작금, 우리나라 정치는 어떤가. `네가 안 죽으면 내가 죽는…` 조선시대의 보복정치를 닮았다. 나라를 바로 이끄는 정치가 아니라 죽기살기 전쟁판이다. 정치가 동강나 있다보니 누가 정권을 잡아도 인정치 않는다. 심지어 “정권은 불행의 씨앗”이란 말까지 나온다. 이제 이같은 권력의 불행과 국민적 불행을 막기 위한 장치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 됐다. 국민이 정치를 걱정케 하는 구시대의 정치는 종말을 맞아야 한다.
닭의 신의와 질서올해 정유년(丁酉年)은 닭띠해이다. `닭의 미덕`을 닮기만 해도 올 한 해는 무난할 것이다. `닭의 가족`은 장닭·어미닭·병아리로 구성된다. 지켜보면 모두 제 구실에 정말 충실하다. 장닭은 먹이가 있는 곳을 찾아내 가족을 인도한다. 어미닭은 병아리 보호에 헌신적으로 그 역할을 한다. 독수리 같은 맹금류가 근처에 오면 신속하게 병아리들을 날갯죽지 속에 감추는 모습은 모성애 그 자체다. 종종걸음을 하는 병아리들도 전혀 말썽 부리지 않고 어미를 잘 따른다. 산닭이라는 야생닭 또한 이같은 `가족의 유대`를 잘 지킨다. 제가끔 분수를 지키고 스스로 자기 역할을 다하는 것이 닭의 미덕이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하면, 나라가 편안할 것”이라는 신라 향가가 있다. 전제군주시절부터 나라 다스리는 요체는 있었던 거고, 그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제발 새해에는 법을 무시하거나, 법 위에 군림하려 하지말자.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닭의 가족만큼만 해도 우리정치와 국가의 품격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새해엔 경제가 어렵고 우리를 늘 위협해온 북한의 동향도 우려스럽다고들 한다. 정치는 갈등과 대립이 더 심각한 국면일 듯 해 보인다. 이러한 때 우리가 할 일은 화합 단결하고, 닭의 신의와 질서를 배웠으면 한다. 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