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까지 학생들과 함께 과외로 논술, 토론 수업을 진행하였다. 논술과 토론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과 함께 재미있는 신문 기사들을 읽고 그것에 대해서 찬반 토론하고, 논술문을 쓴 다음 첨삭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주제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한 포털 사이트에 실린 박종무씨의 “동물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라는 글이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 토론과 논술 첨삭 수업을 진행하면서 필자는 사고에서 패러다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동물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는 글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동물 복지, 혹은 동물 보호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은 서울대공원에서 쇼를 하던 제돌이라는 남방큰돌고래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서 제주도로 돌려보내진 것과 관련된 것이다. 당시 서울시는 제돌이에게 적응훈련을 시켜 제주도 앞바다에 방사하였다. 이 과정에서 7억6천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이에 대해 이 글은 북한 동포들과 같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돕지 않고, 동물을 돕는 것에 많은 돈을 쓰는 것이 타당한 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고 문제를 제시하였다.
필자도 학생들에게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보다 동물을 돕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논술문을 써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 어떤 학생은 멸종위기동물을 돕는 것의 타당성에 대해서 논하는 글을 썼고, 어떤 학생은 동물보호에 대해서 논하는 글을 썼다. 제돌이와 같은 멸종위기동물의 보호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글은 상대적으로 논증이 잘 되었지만, 동물보호의 정당성을 논하는 글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
멸종위기동물보호의 경우는 보통 `종 다양성`과 `생태계의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많이 논증된다. 이 경우는 종의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안정되고, 그래야만 생태계의 균형이 유지된다는 것이 중요한 논거로 제시된다. 현재 우리들은 환경문제를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심각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논거들은 쉽게 납득 가능한 것이 된다.
하지만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유기동물들이나 개사육장, 혹은 개나 고양이 공장 등에 학대받고 있는 동물들을 보호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거가 제시되지 않는 것이다. 학생들이 제시하는 논거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에 동물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만큼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왜 유기되거나 사육장에 있는 개나 고양이를 보호하는데 돈을 써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 충분하지 않게 느껴진다.
근대 이후, 동물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이성 중심주의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동물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영혼이 없으며 오직 사람만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물은 영혼이 없는 기계나 다름없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이런 신념하에 동물실험을 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1960년대 리처드 라이더는 동물 실험을 하거나 동물 학대를 하는 것은 `종차별주의`(speciesism)라고 비판하였다. 피터 싱어는 감각능력이 있는 `모든 존재`에게 쾌락과 고통에 관한 이익은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공리주의를 근거로, 동물도 고통이나 쾌락을 느끼는 한, 인간과 동등한 이익을 누리며 윤리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동물보호법은 리처드 라이더나 피터 싱어의 주장을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논술 교실의 학생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이익과 관련 없는 무조건적인 동물보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여전히 이성 중심주의라는 관점에서 동물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통 받는 동물이 자신과 애착관계에 있지 않을 경우에는 그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기 힘들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