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개입`을 시인하자 야권은 거국중립내각을 주창했다. 새누리당이 전격적으로 이를 수용하자 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 등은 “국면 전환용”이라며 하루아침에 말을 싹 바꾸었다.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후보자를 지명된 다음에는 `후보지명 철회`를 외치면서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했다.
박 대통령이 8일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에게 내각 통할권 등 충분한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내각 통할권`이라는 표현이 모호하고 `2선 퇴진` 의사가 안 보인다”며 걷어찼다. 야권은 한걸음 더 나아가 거리투쟁 동참을 선언하면서 대화를 통한 정국수습 의지를 접고 있다. 야3당 대표는 9일 박 대통령의 제안을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평가절하하고 12일의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하기로 합의했다. 대통령의 표현을 문제 삼으면서 영수회담 제의를 거부하는 것은 모순이다. 진의를 의심하면서도 이를 확인할 만남에 손사래를 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2선 퇴진`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주장도 구구각각이다. 누구는 대통령이 외교는 수행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내치와 외치 모두에서 손 떼야 한다고 부르댄다.
스스로 정리된 방안도 없이 저의가 아리송한 `2선 퇴진` 주장만 거듭하면서 `공 떠넘기기`에만 열중하는 형국이다. 야당의 행보를 살펴보면 정작 `정국 수습`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하야하라`는 격앙된 민심에 편승하여 대규모 민중집회에 동참하겠다는 것을 보면 현 정권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쪽으로 방향타를 돌린 것으로 읽힌다.
헌법정신과 헌정질서를 고려할 때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이런저런 국정정상화 방안들은 칼로 두부 자르듯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폭발 직전까지 흔들린 민심에 무턱대고 편승해 대안도 없는 `분노`를 덧내기만 하는 행동은 나랏일을 짊어진 정치인들이 취할 태도가 결코 아니다.
여야 정치권은 온 국민들이 겪고 있는 혼란상황에서 하루속히 갈래를 찾아 문제해결에 앞장설 의무와 책임이 있다. 작금 야권의 태도는 국민들 사이에 정치에 대한 염오(厭惡)를 무한 증폭시킬 따름이다. 입장을 명확히 하고 담백하게 나서서 난국타개에 나서는 거대야당의 성숙한 모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