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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가 진실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등록일 2016-11-08 02:01 게재일 2016-11-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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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최근 천경자 화백의 그림 `미인도`가 가짜라는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이 논란은 1990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작품의 전시회를 열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천경자 화백은 `미인도`를 자기가 그리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이 주장은 미술협회나 법원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천 화백은 절필 선언을 하기도 했다. 위작 논란은 `미인도`가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도 위작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작가 본인이나 비평가들의 주장보다는 소장자나 소장 기관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왜 그런 것일까?

`미인도`의 위작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우선 1991년 천경자 화백이 제기한 위작 논란이 있었다. 이 때는 의뢰를 받은 한국화랑협회는 진품이라고 판정을 했고, 법원은 `판단불가`로 판결했다. 두 번째는 1999년에 있었다. 당시 권춘식이라는 그림 위조범이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그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본인이 천경자 화백의 그림 여러 개를 참조해서 `미인도`를 위조하였다고 자백했다. 이 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에서 작품을 감정했고, `진품`으로 판정했다.

이전 두 번의 위작 논란에서는 진품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래서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유족측은 프랑스의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라는 감정팀에 이 작품을 의뢰했다. 이 감정팀은 `미인도`를 2억4천만 화소의 특수카메라와 다중분광 카메라 등의 장비를 동원해 촬영한 후 그림을 1천500층위로 나눠서 분석하는 기술을 사용하였다. 그 결과, 진품확률이 0.0002%라고 판정하였다. 붓의 터치와 같은 육안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미세한 차이들을 분석한 결과 통상적인 천화백의 기법과는 다르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뤼미에르 테크놀로지`의 위작 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정적인 반대 증거는 미술관이 이 그림을 1980년 4월부터 소장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프랑스팀은 이 그림이 1981년 작품인 `장미와 여인`을 보고 만든 위작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미술관은 프랑스팀의 판정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 하고 있다.

필자와 같은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작가가 자기 작품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미술품 (경매) 시장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찮은 것이라서 작가 자신의 주장마저도 무시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유명한 화가의 미술작품은 수십억을 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작품이 위작이라고 판정되면, 수십억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천경자 화백의 작품들도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경우의 하나이다. 올해 3월 천 화백의 작품 중 하나가 17억원에 낙찰되었다. 이 낙찰가는 그의 작품 `초원 2`가 12억원에 낙찰된 이후, 7년 만에 가장 고가라고 한다. 더구나 천 화백이 작년에 작고하면서, 전문가들은 그의 작품 가격이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술작품의 경우, 작가가 죽으면 그의 그림들은 한정판이 되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이번 프랑스팀의 판정이 `미인도`의 위작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지는 확실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 판정도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증거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작품이 진품이라는 입장을 계속해서 고수하고 있다. 위작으로 판명될 경우, 작품 가치는 10억여 원에서 0원으로 떨어질 뿐만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은 작품의 진위를 판단하지 못하는 기관이라는 불명예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계의 위작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삶에는 이익이나 이해관계에 따라서 진실이 왜곡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짜임이 분명한데도 가짜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삶에서 진실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그런 만큼 그것은 더욱 소중한 것이 된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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