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 아침, 필자는 인터넷신문에서 JTBC의 특종 기사를 보았다. 미르재단 설립과 자녀의 이화여대 입학 특혜 의혹 등으로 세간을 시끄럽게 하던 최순실씨에 대한 것이었다. JTBC의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씨가 독일로 떠나면서 사무실을 정리했는데, 그 사무실에서 버린 컴퓨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등이 포함된 파일들이 다수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수요일 저녁,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씨로부터 국정운영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는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JTBC의 보도는 그간 소문으로만 떠돌던 최순실씨가 민간인 신분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사과도 그런 점이 있었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었다.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혹은 분노를 혹은 실망감을 느꼈다. 그 결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14%로 떨어졌으며, 여당 지지층의 대통령 지지율도 크게 하락하였다.
지난 월요일 저녁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는 국민에게 한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이미지는 “경제를 살리겠다,”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는 약속을 그가 꼭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지지자들에게 주었다.그 덕분에,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보도들은 그간의 이미지들이 모두 `허상`이었음을 드러냈다. 국민이 믿고 의지할 만한 강한 지도자가 아니라 국가적 의사결정을 한 민간인에게 의지한 나약한 지도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언론을 통해서 쏟아지는 최순실씨와 관련된 보도를 읽으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배신감을, 반대자들은 모욕감을 느낀다. 국민 모두가 속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집안 사람들과의 관계는 여러 번 언론에 회자되었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언론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 이 때는 한나라당이 경쟁력 있는 후보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2년 대선 과정에서는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침묵했고,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동참했다.
또한 다수의 지지자들, 특히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아버지를 잃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지지를 결정했다. 이런 심정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 때 30%대의 콘크리트 지지도를 유지할 수 있는 토대이기도 했다. 이 점은 며칠 전 mbn의 저녁 방송에서 한 여성 앵커가 최순실씨에게 “당신과 대통령의 관계는 이해할 만한 점이 있다. 불쌍한 언니를 위해서 빨리 귀국하라”고 말한 데도 잘 반영된다. 이런 발언은 그 지지자들의 집단적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외신에서는 대통령이 무속인에게 조종당하는 것에 한국 국민들은 화가 난 것처럼 보이며, 박 대통령이 직위를 유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보도하였다. 또한 한국이 국가적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고도 보도했다.
오늘 대한민국이 직면한 위기는, 국민들이 감성에 기반한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잘 보여준다. 불쌍한 사람을 돕고 싶으면 봉사기관에 지원금을 내거나 봉사활동을 하면 된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행위는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자선 행위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공통 이익이 연결된 국가의 지도자를 뽑을 때는 어디까지나` 이성`에 기반한 판단을 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