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서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공부 모임에 갔다. 외국 소설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다. 스터디를 마친 후, 함께 치킨과 맥주를 먹었다. 이 날의 “치맥” 값은 한 여성학자가 냈다. 그러자 다른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것이 김영란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지? 하는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기쁘게 얻어먹고 마셨을 것이지만, 지금은 남이 사주는 것을 얻어먹는 것이 직무와 연관이 없어도 초대 받은 사람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김영란법`은 2015년 3월 27일 제정, 공포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서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이 시행된 날, 각종 언론매체는 김영란법 위반에 대한 첫 신고가 대학생이 한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 대학생이 익명으로 한 교수가 다른 학생으로부터 “캔 커피”를 받았다고 신고했다고 한다. 경찰에서는 캔 커피가 3만원 미만의 것이라 김영란 법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학생에게 안내한 후 사건을 종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보도를 보면서 필자는 “아, 이제는 학생들에게 캔 커피나 주스 병 같은 것도 받아서는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가끔 학생들이 필자의 연구실을 찾아올 때 음료수를 한 병 정도씩 갖고 와서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학생들이 필자의 수업을 듣고 있고 찾아온 용건이 수업 관련된 내용이라면, 천 원 미만의 음료수 병들도 청탁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 밥을 사주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밥을 사주는 것은 `교수 강의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라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는 가끔 수업 시간에 말썽을 부리거나 혹은 칭찬을 해주고 싶은 학생들이 있을 때 같이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하곤 한다. 연구실에서 용건만 말하는 것보다는 밥을 같이 하면 서로 심적인 긴장과 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회식을 할 때에도 학생들이 교수의 밥값을 내주면 안 된다고 한다. 다만, 모임 전체의 비용을 학과 운영비에서 쓰거나, 교수가 자기 밥값을 자기가 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교수의 집에 초대되어 갈 때, 지나치게 비싼 물건을 갖고 가는 것도 안 된다고 한다. 초대에 대한 답례품으로 비싼 양주나 선물을 사가지고 가면 이것도 모두 부정 청탁 금지를 위반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일본의 도호쿠 대학에 한 달 간 방문했을 때, 필자는 학과의 회식 자리에서 학생들과 교수들이 모두 각자 돈을 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또한 작년에 보스턴에 있을 때도 대학원생들이 교수에게 저녁 초대를 받으면 포도주 한 병 정도 사가는 것을 보았다. 한국도 김영란 법 덕분에 회식에서 교수와 학생이 더치페이를 하거나, 교수의 집에 초대되어 갈 때 서로 부담 없는 작은 선물(3만원 이하의)을 사가는 것이 점점 눈에 익은 풍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최근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이야기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이다. 친구 관계이든 비즈니스 관계이든 간에 무엇인가를 받았으면 돌려줘야 한다. 친구 사이라도 받은 뒤 돌려주어야 할 것을 빨리 주지 않으면, 불만과 서운함이 쌓이고 점점 관계가 나빠진다. 서로 이해관계가 없는 친구사이에도 이런데, 만약 이것이 청탁성의 선물이나 뇌물이면 그 돌려줌의 무게는 더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선물은 될 수 있으면 안 주고 안 받고, 밥 먹거나 술을 먹을 일이 있으면 자기가 먹고 마신 것은 자기가 내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야 서로에게 빚진 기분 없이 다음에도 쿨 하게 만날 수 있다. 이번을 기회로 자기 밥값이나 술값은 자기가 내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