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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도 너무 덥다

등록일 2016-08-23 02:01 게재일 2016-08-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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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필자의 기억 상 가장 더웠던 해는 1994년이었다. 그 때 필자는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중이어서 매일 학교에 나가서 공부를 했다. 학교 연구실에 에어컨이 있을 리 없으니 무척 더웠다. 더위 때문인지 학교에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 때 박사 논문을 쓰던 선배 언니와 필자 둘이서만 학교를 나왔다. 더위와 싸우면서 같이 공부해서인지 이 선배 언니와 나는 지금까지 친하다. 그런 언니와 며칠 전에 학회에서 만났다. 언니는 그 때의 추억을 떠올렸는데, 그 이유는 올해가 더워도 너무 덥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낮 최고 온도가 34도였다. 다른 지역도 35도 36도를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더운데도 불구하고 필자의 집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일 년 동안 잠시 살기 위해서 들어온 집이라 에어컨을 설치하기가 번거로웠기도 하고 전기료 걱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올 여름이 이렇게 더운 줄 알았다면 당연히 에어컨을 설치했을 것이다. 십 년 가까이 된 낡은 선풍기로 버티기에는 너무 덥다. 날씨와 매일 싸우다보니 점점 지쳐가는 느낌이다. 일도 거의 2주일 이상 손을 놓았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에어컨을 싫어하는 사람도 에어컨을 켜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선풍기로 버티느라 전기료 걱정이 없다. 하지만 요즘 TV를 켤 때마다 뉴스 시간에 에어컨 사용으로 인한 전기료 폭탄에 대해서 계속 방송하고 있다.

한국의 가정용 전기가 6단계의 누진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100㎾ 단위로 한 단계씩 올라간다. 그리고 100㎾인 1단계와 500㎾ 이상인 6단계 사이에는 요금 차이가 11.7배 정도 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전기요금보다 평균 40~50% 저렴한 편이라고 한다. 또한 YTN의 보도에 따르면, 국제에너지기구, IEA의 분석 결과 1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OECD 평균의 54.6%로 34개 회원국 가운데 26째이다. 하지만 산업용 전체 전기 소비량을 집계하면 OECD 평균의 1.3배로 높아진다고 한다. 이런 통계 자료들은 개인들을 희생해서 기업들에게 이익을 주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책적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는 전기 누진제에 대한 비판 여론 때문에 누진제를 3단계나 4단계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누진제를 줄이는 방안에 대한 검토는 몇 년 전부터 있었다고 하나 확실한 결론은 아직까지 없었다. 올해는 무더위로 인해서 대다수의 가정이 갑작스럽게 늘어난 전기료를 실감하였기 때문에, 누진제 개정을 압박하는 여론이 높아진 것이다.

미국 정부에서는 최근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에 대비해서 `에어컨을 사용하여 시원한 곳에 있으라`고 국민들에게 권고했다고 한다. 필자도 작년에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낼 때 5월 말부터 에어컨을 사용했고, 거의 하루에 12시간 정도 에어컨을 켜놓았지만 에어컨 사용으로 추가된 전기료는 3만원 정도였다. 물론 창에 다는 작은 에어컨이었기 때문에 큰 에어컨에 비해서 전기 사용이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기료 걱정에 에어컨을 켜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매일 TV를 틀면 나오는 전기료 폭탄을 걱정하는 뉴스들을 보면서, 왜 우리나라는 국가 경제, 기업 경영을 위해서 개인에게 이토록 희생과 손해를 강요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이 개인들은 어떤 기업의 직원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기업의 이익이나 이윤이 모두 기업 구성원들이나 사회 전체 구성원에게 1/n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선풍기 바람으로 버티면서 무더위로 밤잠을 설치면서 필자는 괜히 억울해졌다. 필자가 열사병에 걸린다고 누가 치료비를 대신 내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국가는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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