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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주의, 유럽중심주의 그리고 미국중심주의

등록일 2016-08-09 02:01 게재일 2016-08-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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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필자는 이번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잠시 미국의 보스턴을 방문했다. 잠시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필자는 우연히 스위스에서 온 여성 학자를 만났다. 그녀와 몇 번 만나 이야기 하면서, 이제 `유럽중심주의`는 교과서에나 있는 단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역사학과 철학의 화두였던 `서구의 몰락`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여성학자는 스위스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주로 경영 혁신이나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비즈니스에 필요한 회사의 사람들을 찾고 그들과 약속을 잡는 전략을 세우는 것을 연구한다고 했다. 서로 보스턴에 온 목적이나 체류 기간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중, 갑자기 그녀는 `미국 사람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필자에게 물어보았다. 너무 갑작스럽고 직접적인 질문이라 잠시 당황했다. 필자는 작년에 하버드대학교에서 연구년을 보내면서 많지는 않지만 미국 친구들을 사귀었기 때문에 좋다 싫다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웠다. 필자가 우물거리자 이 학자는 자기가 만난 학자로부터 겪은 이야기를 했다.

보스턴에 있는 대학 중 한 곳에서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를 만났는데, 그녀가 스위스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한참 들은 후에 갑자기 “아 프랑스에서 오셨다구요?”하고 물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녀는 술자리에서 미국 학자가 “프랑스와 스위스가 뭐가 달라요?”라고 물었다고 약간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요점은 미국학자가 스위스라는 나라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며칠 뒤 아침에 필자는 이 학자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녀는 필자에게 또 미국 사람들에 대해 불평했다. 이번에는 보스턴 근교에 있는 대학의 경영학 교수와 만나서 대화했다고 한다. 그녀와 미국 학자는 경영혁신 방법에 대해서 토론하였는데 둘 사이에 관점의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 학자는 미국의 성공적인 경영혁신 모델을 스위스의 기업에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한다. 이에 스위스 학자는 스위스의 기업 환경이나 사정이 미국과 다르므로 스위스에 맞는 방법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미국 학자가 미국에는 경영혁신 등으로 노벨상을 탄 사람들도 많다, 미국의 우수한 모델을 스위스에 적용하는 것이 좋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이 말에 그녀는 매우 자존심이 상한 것으로 보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는 `유럽중심주의`는 이제 교과서 속에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다른 지역 나라들에 대한 유럽의 문화적, 정치적 우월성이 표현되어 있다. 15세기부터 17세기에 이르는 대항해 시대와 18세기의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을 거쳐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다. 청나라가 1840~1842년의 제1차 아편전쟁 이후로 몰락의 길을 걷고, 19세기 말에 제국주의가 전성기를 맞으면서 세상의 모든 부와 힘은 유럽에 집중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위스는 제국이었던 적은 없다. 스위스는 `윌리엄 텔`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15세기까지 신성로마제국의 속국이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스위스가 유럽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유럽 사람으로부터 미국 사람들의 무례함과 오만함에 대한 불평을 들으면서 필자는 세계의 중심이 미국이 맞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유일한`제국`이다. 하지만 이것을 시시콜콜한 일상사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스위스 사람으로부터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좀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그러면서 필자의 머리에 떠오른 단어가`미국중심주의`였다. 우리나라는 역사상 한 번도 중심이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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