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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란 가면 쓴채 접근하는 뇌물

정철화기자
등록일 2015-06-12 02:01 게재일 2015-06-1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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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물의 역사` 임용한 외 2명 지음  이야기가 있는 집 펴냄, 400쪽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은 “백성이 가난한 것은 아전의 탐학 때문이고, 아전의 탐학은 뇌물 때문이며, 뇌물이 자행되는 것은 법이 해이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법이 해이해질수록 인간의 탐욕은 똬리를 틀고서 먹잇감을 찾는다는 것이다.

공저자인 임용한·김인호·노혜경 씨는 연세대 사학과를 나온 동창 사이다. 이들은 세상과 사람을 움직이는 은밀하면서도 거대한 힘이었던 뇌물의 역사를 더듬어본다. 뇌물은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 문명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예컨대 200년간 전쟁을 지속한 십자군원정도 단 한번의 뇌물로 극적인 반전을 이룬다. 십자군 원정대 대장이었던 보에몽은 성을 지키던 수비대장을 매수해 성문을 열게 했고, 이를 계기로 십자군은 난공불락의 안티오크를 점령해 예루살렘 공국을 세운다.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조선시대 세종 때의 `양자 처벌법`을 원조로 한다는 저자들의 설명도 재미있다. `뇌물 천하`라고 할 만큼 뇌물이 횡행하자 세종은 뇌물을 준 자와 받은 자를 모두 처벌하는 이 법으로 기강을 다잡고자 했다는 것이다.

뇌물도 진화한다. 그리고 선물이라는 가면을 쓴 채 은밀하게 접근한다. 뇌물을 뜻하는 영어 `bribe(브라이브)`가 본래는 자선을 베풀 때 쓰는 선의의 물건을 뜻했다. 영국에서는 `집에 가다가 모자나 사서 쓰라`며 푼돈을 쥐어주던 관습에서 생겼다고 해 `해트(hat)`라고 한다. 하기야 우리나라에도 `떡값`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뇌물인가, 선물인가? 그 경계는 모호하다. 그만큼 이중성을 띤다. 선물을 가장한 뇌물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주면 선물이지만 남이 주면 뇌물이라는 이중잣대도 뇌물의 생명력을 온전케 하는 변명일지 모른다.

/정철화기자

chhjeong@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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