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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겁외사

조낭희 수필가
등록일 2015-05-22 02:01 게재일 2015-05-2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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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오월의 품속에서 반짝이던 경호강 물길이 어느새 가슴 속에서 찰랑거리며 흐른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시간 밖의 절, 겁외사를 찾아가는 오후는 따뜻하고 평화롭다. 뜻밖에도 어수선한 로터리를 끼고 있는 사찰 앞에서 잠시 혼란스럽다. 저절로 백팔번뇌 내려놓고 하심(下心)이 생기는 고요한 사찰을 기대했었다.

18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누각이 일주문인 셈이다. 정면은 `지리산 겁외사`, 뒤편은 `벽해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잘 정돈된 마당 한가운데 성철 스님의 사리가 봉안된 입상이 들어서는 나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생전의 모습으로 걸어 나오실 것만 같다. 조용한 경내에 긴장감이 돈다.

석가모니불이 아니라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는 대웅전으로 곧장 향한다.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광명(光明)의 부처님,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 앞에서 절을 한다. 성철 스님의 진영을 향해서도 절을 하는 동안 여느 법당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 화려한 단청, 출가부터 다비식 장면까지 스님의 일대기가 그려진 대웅전 외벽도 인상적이다.

겁외사는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의 생가터에 세운 절이다. 이영주라는 속명으로 24년을 이곳에서 살았지만 출가 후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니 분명 평범한 분은 아니다. 처자식을 버리고 아들을 보러 직접 산으로 찾아온 어머니에게 돌을 던지며 발길을 돌리게 했다는 일화는 언제 들어도 눈시울이 젖어온다. 모질고 독하지 않으면 중 생활 못 한다던 어느 스님의 말씀도 떠오른다. 그만큼 성불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7남매 중 장남인 스님이 출가를 결심하고 1936년 해인사에서 승려의 계를 받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7대 종정을 지내기까지의 화려한 이력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유명한 법어를 비롯하여 중도사상과 돈오사상을 대중적으로 만든 분으로 훨씬 더 친숙하다.

독서와 토론을 좋아하던 한때를 떠올린다. 성철 스님으로 인해 연기법과 돈오돈수, 돈오점수로 파고들던 지적(知的) 여행은 행복했다. 난해한 선지식은 충만감과 희열을 안겨주었다. 현실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는 욕심과 편견, 감정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에, 돈오돈수보다는 돈오점수에 일치감을 보이기도 했다. 깨닫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선지식 앞에서 젊음 하나로 과감했던 것 같다.

자성(自性)의 경지에 이른 분들의 다양한 이견들을 머리로라도 이해하고 싶었던 치기였는지도 모른다. 수행과는 거리가 멀고 분별심으로 가득 차 있는 자신을 보지 못한 채, 그저 철학적인 담론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그러다 문득 설익은 지식이 삶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회의가 오기 시작했다. 지식의 홍수 속에서 끊임없이 허우적대는, 아집과 편견으로 뭉친 나와의 조우는 많은 것을 생각게 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삶 앞에서 지식은 참으로 초라하고 토론 후의 마음은 공허했다. 언설과 문자에 빠져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어설픈 책 읽기와 독서 토론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마음을 돌아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싶었다. 감히 성불을 꿈꾸지는 못하더라도 참나를 찾기 위한 노력만큼은 생활 속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 역시 변화를 좋아하는 나의 섣부른 치기였다.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굳게 믿었지만 나를 제대로 살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성철 스님의 입상을 바라보며 나를 돌아본다. 나아진 게 별로 없다. 의욕과 벅찬 희망을 품고 시작한 절 기행도 엉뚱한 곳에 관심이 가 있기 일쑤였다. 잊어버리거나 게으름 때문에 제자리걸음을 하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잦는가 하면, 예기치 않은 관계 속에서는 이내 길을 잃었다. 그런 나를 알기라도 하듯 성철 스님이 가만히 다독여주시는 것 같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설사 허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자기는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유형무형 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그러므로 반짝이는 별, 춤 추는 나비 등이 모두 자기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 조낭희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돌에 새겨 놓은 성철 스님의 법어를 읽고 또 읽는다.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져 온다. 어쩌면 이 잠깐의 행복 때문에 절을 찾는지도 모른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서 참 나를 찾는 것은 아닐 텐데, 나는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해 조바심을 내고 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채비를 서두른다. 내 키보다 훨씬 긴 그림자를 끌고 겁외사 마당을 서성이다 부랴부랴 겁외사를 빠져나와 시간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돌아갈 길이 바쁘다. 시간을 의식할 때 나는 또 다른 편안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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