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신문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이야기가 보이스피싱이다. 검찰청이니, 우체국이니 등을 사칭하여 피해자에게 전화를 해서 계좌 정보를 알아내거나 계좌 이체를 유도해 입금을 받은 뒤 ATM 기로 돈을 인출해 나가는 것이다. 나도 직장 전화나 핸드폰으로 보이스 피싱 전화를 몇 번 받은 적 있다. 한 번은 보이스 피싱 사기단의 연변 사투리를 지적했다가 `내가 무슨 사투리를 쓰냐`고 항의를 받기도 했다. 정부에서 보이스 피싱 피해를 대비해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기는 하지만, 보이스 피싱 사기가 끊이지 않는 것은 왜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최근에 사용했던 현금 인출기가 보이스 피싱을 막기에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내가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은행 계좌는 Bank of America(BOA)이다. BOA의 ATM 기계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서 하나는 거액 인출기이고, 다른 하나는 소액 인출기이다. 소액 인출기는 주로 체크카드를 이용하여 소액의 금액을 인출하는 것으로 인출 화폐 단위는 20달러이다. 한 번 인출할 때 800달러까지 인출이 된다. 그런데 100 달러 권으로 인출할 때는 고액권 인출 ATM기를 사용하게 된다. 이 기계를 사용할 때는 신분증을 ATM기에 부착된 스캐너에 스캔 한 뒤 인출을 한다. 만약 신분증이 없을 때는 기계에 부착된 화상통신 기계를 사용하여 은행원과 대화를 한 후 달러를 인출할 수 있다.
나도 얼마 전 집 월세를 내기 위해서 1천500불을 인출하게 되었다. 소액 인출기를 사용하면 여러 번 출금해야 하고 20달러권이기 때문에 지폐수가 많아 불편할 것 같아, 고액권 인출기를 이용했다. 체크카드를 넣고 1천500백 불 인출을 요청하니, 기계에서 인출금액이 너무 많아 인출할 수 없다는 안내가 나온다. 그러면서 은행 직원과 연결하겠느냐고 질문한다. 그래서 Yes를 눌렀더니 바로 화상통신 기계를 통해서 은행원과 직접 연결되었다. 은행원은 나에게 얼마를 출금하기를 원하는지 물었고, 내가 원하는 출금액을 대답했다. 그러자 은행원은 자신이 직접 출금액을 승인하여 내가 사용하고 있는 ATM에서 돈이 출금이 되도록 조치하였다. 이 사람은 내가 출금 확인증을 받은 것을 확인한 후 화상 통화를 종료하였다.
내가 현금을 인출한 시기는 은행이 문을 내린 5시 이후였다. 그럼에도 나는 ATM기를 통해서 은행원과 화상으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또한 고액권을 인출할 경우 신분증을 확인하거나 직접 화상 통화를 통해서 본인인지를 확인하여 출금이 가능하다. 만약 이런 출금 시스템이 한국의 은행에도 도입된다면, 지금과 같은 보이스 피싱이 기승을 부릴까 의문이 들었다.
보통 보이스 피싱은 피해자의 정보를 탈취하여, 범인이 피해자의 계좌에서 돈을 직접 인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대포 통장 등으로 입금을 하게 한 후에 은행 ATM기를 통해서 돈을 인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백만 원 이상의 고액의 돈을 ATM기를 통해서 인출하려고 할 때 미국처럼 화상 통신을 통해서 직접 통화를 하거나 신분증을 확인하는 과정 등을 거친다면,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ATM을 이용하여 돈을 인출하려는 빈도가 낮아질 것이라고 판단된다. 자신의 얼굴이 직접 노출되는 것을 감수하고 돈을 인출하려는 대담한 도둑은 없을 것이라고 추측되기 때문이다. 또한 위조한 신분증을 사용할 경우에도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것보다는 범인을 추적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된다.
보이스 피싱 금융피해의 핵심은 사기단이 피해자에게 입금을 받았다는 사실보다는,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깨닫기 전에 입금 받은 돈을 인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만약 ATM기를 이용한 현금 인출을 까다롭게 한다면 보이스 피싱 사기도 줄지 않을까 한다. 피상적인 대책이 아닌 ATM기를 이용한 불법 현금 인출을 근절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