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라고는 하지만 비다운 비를 아직 보지 못했다. 장마가 실종됐다는 기사처럼 마른 장마에 대지는 타들어가고 있다. 뉴스는 비 소식보단 폭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다. 열대야 소식도 들린다. 강력한 엘니뇨가 발생할 거라는 보도와 함께 초강력 태풍을 걱정한 이들이 많다. 분명 지구는 우리에게 어떤 큰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바쁜 지구인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메시지의 끝은 무엇일지?
뜨거운 지구만큼 중·고등학교도 뜨겁다. 아니 뜨거웠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학기말 시험이 지난 주 전국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서 있었다. 독서실은 초만원이었으며, 독서실 주변 편의점들도 기말고사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이 나라엔 아이들이 시험을 치면 어른들도 같이 시험을 치는 이상한 시스템이 있다. 그 이상한 시스템 덕분에 시험 기간만 되면 독서실 앞 도로는 차들로 넘친다. 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는 없다 싶다.
불야성을 이루던 독서실이 진정을 찾으면서 독서실 주변 편의점들도, 독서실 앞 도로도 모두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뜨겁던 시험 열기가 벼락치기 시험만큼 금세 식어버렸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냄비 근성을 학교 시험을 통해 배우는지도 모르겠다. 벼락치기 시험 앞에 “은근과 끈기, 인내”는 모두 틀린 말이 돼 버렸다. 이 나라 학교 시험이야 말로 국가와 국민성 개조에 일등 공신이라 하겠다.
혹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기억하시는지. 답답한 교육 현실 앞에 필자는 국민교육헌장을 다시 찾아 읽어 보았다. 그러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라는 부분에서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교육계 화두들이 모두 이 안에 있다고. 또 `인성교육`, `특기적성교육`, `수준별 교육`, `융합교육`, `창의성 교육` 등 최근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교육정책들보다 국민교육헌장의 내용이 훨씬 더 구체적이라고. 그리고 지금의 교육정책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이 추상적인 용어들 때문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예로 `특기적성교육`보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라는 문구가 분명 더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쉽다. 어려운 말장난에 갇혀 뜻을 잃어버리고 있지나 않는지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충분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필자는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보았다.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교육인지?”, “교육 목표는 무엇인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과 같은 분명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을 위해”, 아니면 “학생들의 잠재적 소질 계발 위해”, 이것도 아니면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꿈을 찾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등 하기 좋은 말로 얼버무릴 수도 있지만, 마안하게도 정말 잘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건 이 나라에선 교육 이론과 교육 현실이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교육 이론은 이론대로, 교육 현실은 현실대로 정말 따로 국밥도 이런 따로 국밥은 없다.
이제 곧 방학이다. 하지만 교육이 실종된 이 나라에서는 방학도 실종 된지 오래다. 오히려 우리 학생들은 방학이 더 바쁘다. `선행학습 금지법`은 학교에는 왜 적용이 안 되는지 정말 궁금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 넘치면 아쉬움을 모르고, 아쉬움이 없으면 간절함이 없고, 간절함이 없으면 진실함은 당연히 없다. 우리 학생들에게 지금 공부가 넘치고 있다. 그러니 공부에 대한 진실함은 당연히 없다. 제발 이번 방학만큼은 보충수업도 하지 말고, 더더군다나 학원도 보내지 말고 아이들 스스로 공부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 학생들이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하지 않을까. 마른 장마만큼 교육계에도 가뭄이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