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옹다옹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생존 경쟁`이라고 한다. 산다는 것은 곧 경쟁이라는 것이다. 그 경쟁에서 이기려고 또는 지지 않으려고 우리는 공부를 한다든지 운동을 한다든지 또는 돈을 많이 벌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출세를 하거나 부자가 되면 그를 인생살이에서 성공한 자로 부른다.
성공한 사람은 의기양양하다. 노력의 결과가 아름답게 꽃을 피웠다고 어깨를 쫙 편다. 신문에 이름이 크게 실릴 수도 있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서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청한다. 그 부모들도 즐겁다. “나의 자식이 이렇게 크게 이루다니!”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자식을 잘 둬서 좋겠다고 한다.
노력한다고 해도, 모두가 성공하지는 못한다. 성공한다는 것은 많은 실패자가 있어야 한다. 그들은 실패를 딛고 그 위에서 이뤄 낸 것이다. 라디오를 만든 사람은 그 사람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연구해 전기를 발견하고 그 후에 또 많은 사람이 노력해 전기를 소리로 바꿔 낸다. 후에 그런 논문이 쌓이고 쌓인 것을 읽고서 그가 발명해 낸 것이다. 많은 사람의 연구와 노력에 힘입어서 자기가 발견한 것이다.
한 사람이 성공했다면 그는 주위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곳에는 친구, 선생님, 보조원, 가족, 주위의 사람들 등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어떤 이는 시간적으로 또 어떤 이는 경제적으로 혹은 연구 자체에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때로는 실패해 침울할 때는 격려의 술잔을 나누면서 많이 도와줬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다.
꼭히 세상적인 성공만이 성공이 아니다. 조선 시대에 안동에는 `원이 엄마`라는 분이 계셨다. 그 분은 시골의 한 사람의 아낙네로 평범하게 살았었다. 남편이 일찍 죽어서 시부모를 모시는 등 가사를 책임져야 했다. 애절한 글을 남편의 주검 옆에 묻어뒀는데 얼마 전에 이장하려다가 발견해 현 시대의 사람들에게 애절한 부부애를 남겼다.
그 분의 편지는 영구 보관하게 됐고 원이 엄마는 후대의 국민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는, 부부 사랑의 표상이 됐다. 이제 그 분은 유명 인사가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선 시대에 청나라에 사신의 부관으로 따라갔던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내 놓았다. 그 당시에는 그 저술에 대해 왕에게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지금은 유명 인사로 역사에서 학생들은 그의 이름을 외운다.
성공한 사람이란 그 시대에는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링컨 대통령도 그 시대에는 여러 번 선거에서 낙선했다. 겨우 대통령이 되자 남북전쟁이 끝날 때쯤 권총으로 사살 당했다. 그러나 역사가 흐른 후에는 그의 이름이 지구를 덮을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됐다.
“나는 성공한 사람이 돼야지!”라는 생각은 잘못 생각한 것이다. 당대에 성공해 빛을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예수는 처절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수십억명의 인구들이 그를 추앙한다. 왕관을 버리고 숲 속으로 들어가 버린 석가모니는 지금도 동서양의 철학을 쥐락펴락해 오고 있다. 그럼 석가모니는 실패한 분인가?
부자가 되는 것은 성공한 것일까? 어떤 면으로 보면 성공자 일 수 있다. 그러나 지구위의 재물을 공평하게 갖지 않고 자기가 많이 가진 것으로서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성공한 사람의 계열에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태석 신부 같은 분은 소유를 멀리 하고 사랑을 나눴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세상의 재물은 공평한 분배가 이상적이다. 살면서 재물을 더 많이 모았다는 것은 성공으로 볼 수 없다. 부자가 되는 것은 삶에 편리한 도구를 더 갖고 있을 뿐이다. 성공의 기준은 정신세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