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욕이 없다면 이 세상의 범죄는 거의 사라질 것이다. 태어날 때 우리는 모든 면에서 빈 손으로 공평하게 태어났지만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빈부의 차이가 드러나 버린다.
사회적으로 똑같은 조건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소유를 하려면, 사람은 남의 분량을 합법적으로 자기 쪽으로 모아야 한다. 이렇게 많이 모으면 우리는 그를 부자라고 하고 제일 많이 모은 사람을 재벌이라고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야 말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이 돈의 추구가 인생경영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만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간혹 사람에 따라서는 돈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 살면서도 이것을 수용하려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영혼마저 자본주의에 팔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차라리 가난한 아빠로 남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 중에 소유하고 싶지만 능력이 없어 소유하지 못하는 것은 무능력일 뿐이다. 그러나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소유하지 않는 자는 참된 무소유 주의자이다. 그들 모두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려는 자본제일주의에 역행하는 사람들이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는 돈에 대한 기준이 있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써라`라는 것으로 돈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있었다. 돈벌이란 개 수준에서나 할 수 있는 짓일 정도로 본 것이다. 청빈 자를 칭송했고 황금을 두고 서로 갖기 위해 싸울까봐 형제는 그것을 물속으로 던져 버린 이야기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돈이 있다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난하면서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자이면서 행복한 자도 역시 있다. 그러나 이런 부자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부자이면서도 불행한 사람이 있나하면, 가난하면서도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불행한 사람도 있다.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이 허다하다. 제일 좋은 것은 많은 돈을 가진 행복한 사람일 것이고, 가난하면서도 불행한 사람은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일 것이다.
또 부자가 되고 싶으나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하면 “그까짓 것, 돈! 더러운 것! 적게 가진 나는 오히려 깨끗하다”고 하면서 돈을 따먹지 못하는 신 포도로 치부함으로써 합리화시켜 위안을 받기도 한다.
돈은 생활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우리는 성인이 된 후 대부분의 좋은 시절은 돈을 위해 허둥대며 세월을 보낸다. 돈은 쫓으면 쫓을수록 더 빨리 도망가 버린다. 그래서 인간에게 탐욕의 대상이 되는 돈을 충족하지 못하면, 이를 해소하려고 범죄가 그를 유혹한다. 돈에 몰입하면서도 “당신은 왜 살아가느냐?”를 그에게 물어 보면 사회적 안정, 인류 봉사, 자아실현 등을 이유로 설명한다. 아무도 돈을 위해 살아간다고는 하지 않는다.
넉넉지 못한 자가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면 그것은 자신의 생활을 남에게 맡기는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부자는 생활을 스스로 해결해 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부자가 되려는 것은 돈이 자기를 위해 일하도록 하는 노력의 과정이다. 왜냐하면 돈을 충분히 이용하려면 많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도 돈의 노예가 되기 십상이다.
돈에 대해서는 누구나 마음속에 두려움과 욕심이라는, 좋지 않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억제하기가 매우 어렵다. 더 많이 벌고 싶은 탐욕도 있지만 우선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를 열심히 일하게 만든다.
돈을 많이 갖든 적게 갖든, 유혹은 모든 사람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돈을 악의 근원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돈은 교환의 도구일 뿐, 악 그 자체는 아니다. 다만 돈을 효용성 있게 사용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그러기에 돈을 건전하게 벌어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려면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