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얼굴`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문학동네 펴냄, 376쪽
1943년 트레블링카 강제수용소로 이송되기 직전, 1942년 결혼한 아내 테오필라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 한 농가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준 주인 부부에게 세계문학 작품들을 이야기로 풀어 들려주며 열 달 넘게 숨어 지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폴란드군에 입대하여 정보부와 외무부 등에서 근무했고 폴란드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런던 주재 폴란드 총영사관에서 영사로 일하기도 했다. 런던 주재 시절 `제국`이라는 뜻을 가진 `라이히(Reich)`라는 성의 뉘앙스 때문에 `라니츠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49년 폴란드 정보부와 외무부, 공산당에서 축출된 뒤 1958년까지 독일문학 편집자, 비평가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폴란드에서의 부자유를 견디지 못한 그는 1958년 가족과 함께 서독으로 이주해 정착했다. 이후 한스 베르너 리히터가 창설한 독일 현대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문학단체로 일컬어지는 `47그룹`에 참여, 현대 독일 작가들과 교분을 맺었고 1960년부터 1973년까지 `차이트`의 상임 문학평론가, 1973부터 1988년까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문예부장으로 일하며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독일 공영방송 ZDF의 `문학 4중주`라는 서평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부터 전 독일에 이름을 알렸고 문학의 대중화에 앞장섰으며 권위를 타파하는 거침없고 명쾌한 평론으로 독일 문학계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공격적이며 친대중적인 평론으로 귄터 그라스, 마르틴 발저, 페터 한트케 등 여러 유명 작가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기도 했다.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 웁살라 대학 등의 객원교수를 지냈고 1974년부터 튀빙겐 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다. 뮌헨 대학, 위트레흐트 대학, 웁살라 대학 등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리카르다 후흐 문학상, 괴테 문학상, 토마스 만 문학상, 루트비히 뵈르네 문학상 등을 받았다.
그는 책 `작가의 얼굴-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이야기`(문학동네)에서 고전이 가진 시대를 초월하는 힘과 아름다움을 역설한다. 우리의 삶에서 왜 문학이 유의미한지, 그리고 왜 거장들의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를 조금의 억지나 강요도 없이 자연스레 일깨워준다.
책에는 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평생 수집한 작가들의 초상화가 60점 넘게 실려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