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신문 지상에는 사과하는 것에 대한 기사가 줄을 잇고 있다. 기업체 비리, 비행기 승무원 폭행사건, 성추행 사건, 5·18 역사 왜곡 보도 등에서 계속 나타난다. 사회 정보 시스템의 발달로 과거에는 숨길 수 있었던 것도 수면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활동의 영역도 커지고 삶의 질도 매우 성장했다. 그런데도 가진 자들은 아직 자기들 사고가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해서 그 간격만큼의 현실감이 떨어져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사과하려면 시원하게 상대방 당사자에게 해야 한다. 사과를 후련히 하면 당시에는 비난을 받더라도 조금 지나면 분위기가 곧 숙질 수 있다. 그러나 진실성이 부족하든가 하여 잘못되면 사과하고도 욕을 얻어먹을 수 있다. 그럼 시원스런 사과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무조건 사과`가 제일 좋은 방법이다. `당신이 기분 나쁘면 미안하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언짢으면 사과해 주겠다`는 투의 사과는 사과의 형식만 빌렸을 뿐 오히려 사과를 빙자한 공격에 가깝다. 이럴 때 우리는 `건방진 사과`라고 한다. 사과는 고통을 당하는 상대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 고통을 자기도 갖겠다는 의미를 가져야 한다.
또 우리는 청문회 등에서 여러 번 사과의 표현을 들었지만 그것은공격당할 때 위기를 빠져나가기 위한 단어에 불과한 사과였다. 사과와 많이 닮으나 진심이 빠진 사과를 우리는 `짝퉁 사과`라고 한다.
또 하나의 피식 웃어버릴 사과의 형태는 “~~한 실수가 있었던 것을 사과를 합니다”라는 사과이다. 그런 사과는 자기와는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으나 조금 연계됨으로 사과한다는 말투이다. 능동형이 아니고 `수동형의 사과`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부하가 사과를 할 때, 자기를 임명한 자를 사과의 대상에 포함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청와대에서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 “전 국민과 대통령에게 사과를 한다”고 했다. 전 국민은 사과를 해야 할 대상이지만, 대통령에게는 개인적인 일임으로 찾아가서 사과를 해야 한다. 이런 사과는 자기들끼리의 사과로서 속칭 `셀프(自家) 사과`라고 한다.
유감을 표명할 수도 있다. 이는 사과의 시작 부분일 뿐으로서 자기는 사과를 했다고 하지만 상대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진심어린 사과로 보기에는 약하다.
어느 대기업은 사건이 일어난 후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대 국민 사과를 했다. 타이밍을 놓치고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거래처 주인들 면전에서 사과를 하지 않고 엉뚱하게 국민에게 먼저 사과를 했다. 국민은 속속들이 알고 있고 똑똑하다. 국민 소득 수준이 낮은 시대의 방법으로 어려움을 면피하려 한다면 자신들의 후진성을 들어낼 뿐이다.
사과는 좋지만 해명은 짧아야 한다. 명백한 오해가 있으면 해명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때는 해명의 뜻을 명확하고 짧게 해야 한다. `그러나~` 또는 `그리고~` 등등으로 해명이 길어지면 본뜻을 놓치게 되기 쉽다. 그러면 마음속에 찌꺼기를 남겨두게 되어서 또 다른 갈등을 만들 수도 있다. 사과는 확실하고 빠르게 할수록 좋다.
그럼 진심어린 사과는 왜 어려운가? 첫째 이유는 완전한 자기 노출이 두렵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기의 잘못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자기를 합리화 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내 탓`이 아니라 `그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과는 잘못을 지적한 다음에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문제가 커지기 전에 털어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2002년 민주당 김근태 상임 고문은 `최고위원 경선에서 불법 선거자금을 사용했다`고 처벌을 감수하면서 실토를 했다. 이것은 사과를 `용기`로 승화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