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었지만 부모님 사시는 빌라단지 앞쪽에 건설 중인 푸른수목원을 찾았다. 이곳은 서울시로서는 변두리라고 할 수 있는 구로구 항동으로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린벨트지역이었다.
이제 그린벨트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가물치를 비롯해 물고기들이 많기로 꽤 유명한, 수초 무성한 항동저수지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고, 지금은 쓰지 않는 철길이 남아 있으며, 그 너머엔 울창한 천왕산이 있다.
신문지상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동네`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서울시 행정구역 안쪽이고, 지척까지 주거지·상가·공장들이 들어차 있다. 10여년전 이곳으로 부모님이 이사 오셔서 필자도 가끔씩 저수지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이곳을 생태공원으로 만든다 하여 지난 3년간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돼 있었는데, 지금 90% 정도의 공정을 보이면서 다시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물가에 데크(Deck)를 설치해 사람들이 호수를 좀 더 쉽게 관망할 수 있게 만들었고, 장미정원(Rose Garden)과 그 중앙에 가제보(Gazebo)도 만들어 놓았다.
많은 꽃과 나무들 사이로 원두막이 지어져 있고, 생태하천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내게 충격을 준 것은 철길 바로 바깥 쪽에 고속화도로가 개설돼 과거에 없던 큰 소음이 개구리 울음소리를 삼켜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고속화도로가 수목원과 천왕산을 분절시켜 놓았다.
이튿날 아침, 수목원에 다시 나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갖가지 꽃과 나무, 수초 들어찬 연못과 호수, 이리저리 이어지는 산책로가 자연적인 듯 하면서도 테마적이다. 어떤 남자분이 초등생 셋을 데리고 이것저것 설명하고 있다. 인사를 나누다가 도로로 분절된 수목원과 천왕산, 그리고 소음문제를 지적했더니 이 분도 동감하며 안타까워 했다.
`도로개설부서`와 `수목원조성부서`가 달랐기 때문이 아니겠냐며 방음벽 설치를 제안한다. 필자는 생태통로라 부르고 싶은 구름다리를 두어 곳 정도 좀 넓은 폭으로 설치해야 할 것이며, 방음벽보다는 큰 키 나무라도 심으면 소음이 경감될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담장 너머로 밭일을 하고 계시는 동네 분에게 소리쳐 물어 보았다. 저곳 천왕산으로 넘어가는 길이 없느냐고. 이분 말을 따라 수목원 끝자락으로 가보니, 등산로가 고속화도로 위로 개설되어 있다. 산 자락 일부를 없애지 않고 터널 위로 수목원에서 천왕산 가는 길을 좁게나마 연결해 놓았으니, 이것이나마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이 터널 위 등산로는 계단이 조성되고 나무들도 잘 심어져 있는데, 이곳을 통해 예전에 가 보았던 약수터며 밤나무골까지 가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동차 소음이다. 아침이라 교통량이 많지 않은데도 너무하다 할 정도로 큰 소음이 수목원과 주변 마을들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도로가 마을이든 숲이든 관통하게 되면, 그곳에서의 인간 삶이나 생태계에게는 큰 문제들이 생긴다는 것을 역사에서도 봐왔고, 또 이곳에서 보고 있다.
오후 비행기를 타고 포항에 내렸다. 주차된 차를 몰고 공항을 나선다. 창문을 여니 신선한 공기가 얼굴을 감싼다. 이곳저곳이, 그리고 저 멀리까지 아름다운 신록이다. 내 사는 포항은 아직도 많은 지역들이 푸른수목원 못지 않은 생태계이다. 길이 크게 뚫려 있어도 그곳 같은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포항도 중장기적인 계획 하에 도로망과 주거지를 건설하고 생태계 보전에 좀 더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 도시의 아름다운 신록이며 평화로운 삶이 그리 오래 보전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