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 개근상만 생각해도 그렇다.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개근상을 못타는 것이 드문 일이지만 미국에서는 개근상을 타는 것이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학생이 몸이 아프면 학교에 결석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 사회인이 돼 직장에 출근했을 때도 아프면 상사에게 전화 한 통화로 결근하는 것은 아주 가볍게 용인된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선 아파도 등교해야만 하고, 아파도 출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로써 우리나라보다 미국이 낫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 이 작은 차이가 모든 부분에 큰 차이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 모 방송의 저녁뉴스에 이 차이를 보여주는 사건이 소개됐다. 군 복무 중인 A상병이 두통이 심해 소속 부대와 군 병원에 고통을 호소했지만, 두통약 처방만 받았다고 한다. 별다른 조치 없이 군 복무를 계속 해야만 했고, 결국 A상병은 휴가를 나와 민간병원에서 검사받고 나서야 악성 뇌종양이란 걸 알게 됐다. 군 의료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기본적인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사건이다. `젊고 건강한 놈이 무슨 두통이야 꾀병이겠지`라는 정도로 처리한 것이다. 이것이 서양의 상황이었더라면 자세히 알아보고, 살펴보고 검사해 봐서 뇌종양을 미리 발견해 치료시기를 당길 수 있었으리라. 이런 생각의 차이는 개인의 삶과 인격을 더 존중하는가, 아니면 공동체의 가치를 더 존중하는가 하는 데 있는 듯 하다.
서양과의 가치관 차이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든 부정적으로 작용하든 매우 뿌리가 깊다. 또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면 미국 하버드 대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문했다. 어린 시절에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무엇인가라고, 그런데 그 답이 `Everything is going to be OK`이었다고 한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다 괜찮을 거야`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설문한 결과 제일 많이 들은 말은 `공부 열심히 해라`였다. 가문의 영예와 나아가 지연 학연 속에서 자라나 출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우리나라에서는 충분히 이해되는 내용이다.
긍정적인 것도 있다. 전체가 힘을 합쳐서 한 가지 큰일을 이뤄내는 데는 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외환위기 때 보여준 금모으기 행사라든지 붉은 악마로 대표되는 월드컵 응원전, 최근의 K-팝 열풍, 한류들은 공동체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대선을 지나면서 경제민주화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재벌의 부정적 지배구조에 대한 말도 많았지만 재벌의 성장은 한국경제의 성장과 맥을 같이 한 긍정적 요소가 있다. 이런 재벌의 성장 배경에는 한국의 공동체주의가 있다. 전체를 위해서 개인을 희생하는 정신이나 출세라는 전통이 없었다면 전쟁의 잿더미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은 이룰 수 없었으리라. 개인의 희생이란 가치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산업화의 어두운 그늘이 되기도 했다. 또한 출세를 중시하는 전통은 결석 없는 학교와 결근 없는 회사를 만들고, 그것이 주당 가장 긴 시간 노동을 하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
이 작은 차이가 서양과 우리나라와 큰 차이를 만들어 냈다. 개근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서양 교육과 우리나라 교육의 작은 차이라면, 큰 차이는 진로교육을 들 수 있다. 여유와 개인의 개성이 존중돼야 하는 진로교육이 핀란드나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발전 정착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잘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을 빠짐없이 해야 하는 개근 정신때문이다. 사실 진로교육은 자신에게 맞게 특별한 깨달음을 얻으면 충분하다.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진로교육을 정착 시키려면 서양교육과 작은 차이인 개근에 대한 생각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