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바람이 찬 토요일 오전, 포항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아름다운 해변을 품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도심공원, 환호해맞이공원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더구나 자주 지나치는 길목임에도 자주 찾지 못해서 안타까움이 쌓이던 터였다.
주말 오전이어선지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공원에는 별로 사람이 없었다. 아침운동을 하는 이웃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주말 소풍객들은 한 두시간은 더 있어야 나올만한 시간 탓이기도 할 것이다.
정문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광장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니 꽤 멀리 남서쪽으로 커다란 유리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저곳이 포항시립미술관이다. 키 큰 금발의 외국인과 좀 작은 키의 한국인이 무언가 대화를 하며 빠른 걸음으로 필자를 지나 산등성이로 향한다. 필자의 오늘 방문이 며칠 계획된 것임에도 혼자인 것은, 단출하게 여유로움 속에 이곳저곳을 돌아보고픈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세워진 지 3년이 된 포항시립미술관 건물은 주변에 색다름을 주는, 푸른 빛 도는 높고 긴 유리건물이다. 입구 쪽에 가니 노랑재킷에 선글래스의 멋쟁이 여자 분이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짙은 회색 벽돌 톤의 웅장한 내부가 은근한 아름다움과 침착함으로 나를 반긴다.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사유`라는 타이틀이 붙은 개관 3주년 기념전이 아직 계속되고 있었고, 필자는 제1전시실부터 작품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낯익은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그림, 고교 대선배라서 잘 기억하고 있는 이우환 화백 등 여러 작가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한 화가는 자기의 작품들을 `심포니 듣는 것처럼 봐주었으면….`이라고 적고 있다. 여백의 미를 형상화한 작품, 오는 봄을 그린 작품, 그리고 꽃과 나비가 강렬한 빛깔로 그려진 작품도 있었다.
필자는 미술가와 그들의 작품들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학창시절 `건축`을 공부했었다는 핑계로 `예술가연 허세`는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어서, 동창생 화가들 앞에서 한두 마디 해보려 애썼던 적도 있고, 과천에 있는 국립미술관에도 여러 차례 가보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혼자이다. 봄이 오는 동산의 아지랑이를 바라보듯이, 멀리 아름다운 영일만의 해무를 감상하듯이 작품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감상하고, 짧게 적어놓은 작가의 한두 마디 언어들도 음미해 보았다. 이 소도시에 이러한 미술관이 있음이 다행이다. 또한 이러한 대작들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다.
미술관과 박물관은 그 도시가 문화도시임을 상징해준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 도시민의 문화수준을 가늠케 해준다고 할 수 있다. 철강산업도시로 알려진 포항이, 공장과 술집뿐이라던 포항에 이러한 미술관이 있음으로 인해 인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어린 학생들이 부모 손을 잡고 작품 감상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른들에게도 감정순화의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선진의 많은 대도시들이 미술관, 자연사박물관, 과학박물관 등에 많은 정성을 들이는 것은 이러한 도시이미지 제고와 시민들의 여가활용 및 교육기회 제공을 위한 것일게다. 그곳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사색하고 음악도 듣고, 글도 쓰면서 바쁜 일상의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제 봄이 가까웠다. 환호해맞이공원도 앞으로 1~2주 후엔 온통 연둣빛으로 변할 것이다. 많은 꽃들이 피어나고 새와 나비가 날 것이다. 이 봄에는 좀 더 많은 시민들이 미술관을 방문하고 작품 감상의 기회를 얻는다면 좋겠다. 이로 인해 포항이 차차 `예술의 도시`로 불리 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