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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낙엽과 동네의식

등록일 2012-11-07 20:55 게재일 2012-11-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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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문 한동대 교수

여름이 가는 듯 마는 듯 무더위더니 어느새 가을이 깊어졌다. 아침 출근길은 꽤 추워서 이젠 양복위에 바바리를 걸쳐도 괜찮을 것 같다. 내 사무실이 있는 넓은 캠퍼스에는 여기저기 단풍든 낙엽들이 쌓이고, 청소전담 직원인 아주머니들이 아침 일찍부터 쓸어 모으기에 바쁘다.

일요일 아침 잠바를 걸쳐 입고 동네를 산보하자니 아파트 단지 내에도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 활엽수 낙엽들이 여기저기 쌓여있다. 경비원아저씨들이 자주 치워내기에 수북히 쌓일 겨를은 없겠지만, 가을풍취가 물씬 풍겨난다.

단지 내의 아파트 층수가 매우 높더라도 용적률과 건폐율에 제한이 있으니 건물 사이사이에 녹지대가 마련될 수 있다. 학생들에게 근대건축가인 `르 꼬르브지에`를 설명하는 경우가 흔한데, 그는 `300만이 거주하는 빛나는 도시`를 제안하면서 고층주거의 삶을 찬양했었다.

이에 반해 미국의 여류 저널리스트인 `제인 제이콥스`는 주거단지의 인간적인 스케일을 주장했다. 교외의 대규모 스케일에 고층주거 보다는 도심 가까이의 작은 규모의 빈땅에 중층 정도의 복합주거가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제인 제이콥스가 저밀도의 주거를 주장한 것은 아니고, 커뮤니티 형성을 위한 어느 정도의 고밀도를 주장했었다.

커뮤니티라는 것. 이것은 우리나라 말로 동네의식이라는 것이다. 서로 알고 지내고, 서로 협력하는 것. 이것이 커뮤니티 정신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들에서는 이 동네의식이 사라져 가고 있다. 그 이유는 도시화와 개인화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우리의 고층아파트문화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층의 빛나는 도시를 주창하던 르꼬르브지에의 꿈이 실현됐던 대표적인 예로 사람들은 브라질의 `브라질리아`와 인디아의 `샨디갈`을 꼽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르꼬르브지에의 컨셉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예가 한국 도시의 주거단지들이라고 생각된다. 인구가 집중되고 건설회사의 사업성이 걸려있기에 대도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도 생각되지만, 이로 인한 커뮤니티의 사라짐은 가슴 아픈 일이다. 르꼬르브지에는 모더니스트로서`인간의 서로 다름`이라든지 `커뮤니티의식`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개인주의의 본산으로 여겨지던 미국의 대도시에서도 커뮤니티 재건 운동이 일고 있다. 가장 큰 이유가 범죄예방이기도 하고, 서로 힘을 합쳐 낙후된 동네를 재건하자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의 도시에서 이러한 자조적인 움직임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같은 동 주민들도 서로 교류하는 법이 없다. 아파트가 아닌 개인 주택지나 상가에서도 누구하나 주변을 치우는 사람이 없다. 아파트단지나 캠퍼스 안에서는 고용된 이들이 낙엽도 치우고, 쓰레기도 치워 깨끗하나, 거리는 여기저기 버려진 담배꽁초, 쓰레기, 공사폐기물 등으로 지저분한 곳이 매우 많다.

그뿐이랴. 우리의 도시에서는 요즈음 `묻지마 범죄`며 `미성년자 성폭행`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사회가 삭막해지고 있음은 누구나 공감하고 걱정하고 있지만, 누구하나 본격적인 대안을 제안하고 실천하자는 이는 드물다. 이를 대처할 방안은 분명 경찰력의 증강만이 아니라, 서로 보살피고 협력하는 커뮤니티 의식의 재건이다.

거리며 공원의 낙엽을 너무 자주 치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낙엽은 우리에게 가을의 정취를 일깨워주고, 사람들을 거리로 이끌고 대화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밖 상가와 소공원의 쓰레기는 우리 주민들, 그리고 상가주인들 모두가 커뮤니티 의식 속에 힘을 합쳐 치워내야 한다. 그리고 서로 도와 범죄도 예방하고, 자조적인 동네재건을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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