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도심에서 좀 떨어진 신주거단지로 이사 온 이후 대부분의 식사모임을 동네에서 갖고 있었다. 이곳에는 대형 커피숍이 여러 개 들어서 있고, 식당들도 여러 종류 구비된 편이라서 식도락가가 못되는 나로서는 구태여 멀리 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올 한해 동안은 이곳에서 꽤 먼 죽도시장에 좀 더 자주 가게 됐다. 그 이유는 비슷한 연배의 동향인들과 한달에 한번씩 만나기로 했고, 그중 한 멤버가 죽도시장에 횟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년 동안 포항에 살면서 도심 인근인 용흥동 등에도 살았고, 죽도시장이나 동빈내항 인근을 운전해 지나간 적은 많았지만, 음식을 먹거나 물건을 구입하려고 들른 적은 1년에 몇 번 정도였지 않나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죽도시장 죽도시장`하며 홍보차 외쳐대는 사람이 막상 들르는 경우가 그 정도였다는 것이 의외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에게 죽도시장은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 오랜 친구가 방문해 시장구경이나 하자고 할 때 어쩌다 돌문어나 한 마리 삶아먹고 싶을 때 방문할 뿐이었다.
하지만 올해 일년가까이 동향모임 때문에 좀 더 자주 들르게 됐고, 연관된 다른 이유로도 더 찾게 돼 한달이면 두세번은 들르는 곳이 됐다. 친구인 횟집주인도 내가 가는 날을 기다리게 되고, 가끔은 놀러오라 전화도 하게 되니 이젠 말로만 찬양자가 아닌 진짜 이용자가 되어가는 편이다.
죽도시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진기한 것들이 매우 많다. 수조나 대야 속에는 펄펄 뛰는 활어들이 있는가 하면 대게, 문어, 고래같이 커 보이는 개복치. 그뿐이랴, 명태, 새우 등 마른반찬, 밤, 사과, 감 등 과일, 그리고 옷과 이불 등을 파는 가게들이 이곳저곳을 채우고 있다.
또한 한쪽으로는 소머리국밥집, 가구점, 약국 등이 군집되어 있는 곳들도 있다. 처음 포항으로 이사와 침대, 책상 등 가구를 구입한 곳도 이곳이고, 따뜻한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왔기에 겨울 잠바 등과 같은 옷가지들을 구입했던 곳도 이곳이다. 일년 몇 번씩 학생들과 소머리국밥 먹으러 들르던 곳도 이곳이었다.
동향친구들을 만나는 날은 좀 일찍 퇴근해 편한 옷으로 바꾸어 입고, 택시를 타게 되는데 한 20분 걸려 도착해 많은 횟집을 헤치고 나가 친구네 집에 도착하게 되면, 우선 그날 가장 싱싱한 종류를 골라 썰어준 회 큰 접시를 여럿이 먹게 되고, 대게도 맛보고, 튀김도 맛보게 된다. 하지만 이집에서의 대미는 커다란 생선 머리구이다. 방어과의 커다란 생선 머리구이는 아무 때나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 친구가 특별히 마련해 놓는 것이라고 한다.
두어시간 후 헤어질때면 각자 대리운전이나 택시로 떠나게 되는데, 필자는 주변 죽도시장을 좀 더 구경하기도 하고, 동빈내항가를 따라 구경도 하며 걷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동빈내항은 한쪽은 복원공사로 바쁘지만, 다른 한쪽은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차 있다. 수상무대도 있고, 물가 산책로가 조성되고, 갖가지 조형물과 이색적인 아열대 식물들도 심어져 있다. 아직은 100%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독특함을 풍겨주고 있다.
때로는 해변도로가 아닌 안쪽 길을 걷기도 한다. 좁은 도로를 걷다보면, 낡은 건물들, 영세한 음식점 등이 늘어서 있고, 70년대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국내외적인 불황이고, 더구나 도심은 교외 주거단지들에 밀려 쇠퇴하고 있다.
이렇게 10분, 15분 걸어 포항에 하나뿐인 백화점 건물이 보일때 쯤 택시를 잡아타게 된다. 이렇게 걷는 것은 친구들을 만나고, 좋은 음식 먹는 기쁨에 평소 다짐하던 다이어트계획을 잊게 된 것을 반성하며 걸어보자는 뜻이 가장 강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죽도시장과 동빈내항과 도심지역의 모습을 좀 더 관찰할 수 있게 되었으니, 도시분야 전공자인 필자로서는 다행스런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