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연달아서 DMZ (Demilitarized Zone)에 관한 텔레비전 특집을 시청할 수 있었다. 오늘 특집은 59년전 한국전쟁 당시 남편이 미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80여세의 미망인과 60세가 된 따님의 DMZ 방문 이야기였고, 어제는 40여년 전 DMZ 철책선에서 군생활을 했다는 60대 중반을 넘긴 한 남자분의 이야기였다.
1940~5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한 자유주의에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던, 소련을 중심으로한 공산주의자들이 우리 한반도에서 큰 도발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우리 민족은 6·25전쟁의 큰 비극을 겪게 됐었다. 58년전 그 전쟁이 멈춰진 장소가 DMZ이다. 휴전선 양측에 각각 2km씩의 완충지역인 비무장지대를 두고, 그 가장자리에 각자 철조망과 진지를 구축해 아직도 양측의 긴장이 생생히 느껴지는 장소가 DMZ인 것이다.
그 미망인과 딸은 남편이며 아버지인 미군병사가 59년전 행방불명이 됐던 한국땅에 처음 찾아온다고 했다. 아버지가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 곳이 한국이었기에 지난 세월 동안 한국이 너무 무서운 곳이어서 방문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철책선에 위치한 초소 전망대에서 아버지가 전투를 벌였고 행방불명됐던 그 장소를 바라보며 흐느끼고 있었다.
당시 그곳의 전투에서만 미군 수백명이 죽고, 천여명이 다치고, 수십명이 실종됐다고 한다. 이들 모녀는 남과 북이 어서 좋은 관계를 회복해 휴전선 완충지역안에 묻혀있을 실종자들을 어서 빨리 발굴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지금 우리군은 미군과 합동으로 유해발굴작업을 진행하여 지난 수십년 동안 7천여구의 유해를 발굴했다고 한다. 그중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유해는 십여구. 하지만 6·25전쟁 중 실종된 우리 측 유해만도 13만구에 이르며 그중 유엔군의 유해가 8천구 정도 되는데, 2천구는 남쪽 땅에, 2천구 정도는 DMZ 완충지역안에, 그리고 나머지 4천구는 북한 땅에 묻혀있을 것이라고 한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이들의 유해가 가족들 품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음도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제 프로그램은 40여년전 자기가 근무하던 철책선을 찾아 이리저리를 둘러보며, 이제는 손자뻘 되는 사병들이 그곳을 지키게 되도록 변함이 없는 남북분단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 60대 중반 한 남자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분은 전직 국사학교수로서 완충지역안에 남북한계선 꽉 차게 사각형으로 터만 남겨진 옛 태봉국 궁궐의 흔적을 설명하면서, 당시 고려의 시조가 된 왕건에게 쫓겨났던 궁예의 안타까운 신세를 설명하면서 남북학자 누구도 그 터를 조사연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세월이 지나며 DMZ는 전쟁의 상흔을 지워버리고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천연의 생태계로 변모됐다. 궁궐터며 집터에 산림이 우거지고, 강과 호수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와 각종 철새들이 수도 없이 자리하고 있다. 텔레비전 영상을 보면, 그곳에서 천연기념물인 잿빛두루미 수십쌍이 물고기를 잡고 있었고, 수많은 천둥오리들이 까맣게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노루며 멧돼지들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이미 멸종 됐다는 호랑이가 몇 마리라도 살아남아 있지는 않을지 모른다.
동해안쪽 초소 전망대에서는 금강산 일부가 지척으로 바라다 보인다. 얼마전까지 몇 년 동안 남북화해무드 속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을 다녀왔지만, 한 여성 관광객이 큰 이유 없이 북한초병에게 사살되고, 남북은 또 다시 얼어붙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언제나 서로 쌓인 앙금이 가시게 되고, 소통이 되고, 그리고 남북통일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다. 아직 DMZ는 낭만적인 가십의 대상이 아니다. 아직 피눈물 마르지 않은 역사의 현장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