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 한 탈북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분은 40대 중반의 나이로서 모스크바에 무국적자로 지내다가 최근에 다행스럽게도 러시아 정부로부터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아 제3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이었다.
이 분은 북한에서 결혼해 자녀도 낳고 살다가 러시아에 파견된 벌목공으로서, 시베리아의 산림지대에서 어렵게 노역에 종사하다가 10년전 탈출했었다. 그후 러시아에 숨어 살면서 막일도 하고 한국교회의 도움도 받아가며 살아 왔는데, 러시아경찰에 걸리면 있는 돈을 다 뺏기게 되고 북한정보원에게 붙잡히면 북한으로 압송될 것이기에 불안한 하루하루였다고 했다.
이 분이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기자들을 시베리아의 벌목지대로 안내해줬는데, 어두움 속에 보여진 그 벌목소에는 북한 그대로의 건물이며 표어들이 즐비했다. 그 안에서 벌목공들은 나무에 치여 죽고 병들어 죽으며 감시 속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일을 해도 원래 약속한 대로의 임금을 주지 않고, 버는 돈의 80~90%를 뺏어가고 10% 남짓만 받을 수 있을 뿐이었다고 했다.
이 분은 탈출 이후 러시아 여러 도시에 숨어 지내며 밑바닥 생활과 막일을 하면서도 도망치길 잘했다고 토로했다. 버는 돈의 일부를 어떻게 북한으로 보낼 수 있어 식구들이 굶지 않게는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두만강을 건넌 탈북자들의 중국에서의 그리고 제3국에서의 어려운 여정을 보여줬었다. 이들이 몇 년의 세월 걸려 한국땅으로 오는 죽음을 무릅쓴 여정이 너무나 안타까웠었다.
한동안 미국에 거주하면서 알고 지내던 분 중에는 1960년대에 독일에 광부로 갔다가 역시 독일로 파견됐던 간호사와 결혼하여 미국에 사시는 분이 있었다. 이들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그 당시 어려웠던 우리 한국의 살림살이와 함께 그 기사를 읽을 때마다 필자는 눈시울이 뜨겁다. 이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벌어 가족들에게 보내는 돈들이 우리 경제를 살찌게 했고 이들의 성실함을 담보로 많은 경제원조와 협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분은 미국에 와서 전기공으로 일했고 부인은 간호사로 일하면서 집도사고 아이들도 다 대학을 가르쳐서 키워냈다. 나이가 들어 신학교를 가고 이제는 목사안수도 받았다.
이 분과의 인연은 우리 집의 작은 전기공사 때문이었다. 오래전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손에 굳은살이 박힌 전형적인 육체노동 기술자 스타일이 되어 있었는데, 독일에서의 세월과 그후 미국에서의 생활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우리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도 애틋했다.
어떻게 보면 북한의 벌목공과 독일에 파견된 광부들의 경우가 비슷해 보이지만, 그들의 처지며 처우가 전혀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벌목공들도 그 당시 자기들의 처지 보다 좀 나은 보수를 원해 지원했지만, 강제수용소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낮은 임금에 그것도 90%를 빼앗기며 사고로 병으로 죽어갔다.
우리 한국인에게 주어지는 지난 수 십년간의 어려움을 꼽아 본다면 남과 북의 분단이고 이로 인한 여파들이라고 생각된다. 북의 핵탄두 개발과 이로 말미암은 국제정세, 신음하는 북한동포들과 탈북자들의 고통 등 우리 민족 누구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우선 탈북자들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이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체제가 개방되고 주변 나라들과 우호 속에 발전되어 북한동포들이 굶주림과 탄압을 면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물론 더 나아가서 남북이 통일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 한국이 통일된 민족국가로서 세계에서 손꼽는 복지국가며 강대국이 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