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신호등 끊겨 차량들 혼잡, 공장 가동 중단 생산차질
아파트 승강기가 멈춰 시민들이 갇혔고 고층아파트 주민들은 걸어서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시가지 도로 교차로의 교통신호등이 끊겨 차량들이 뒤엉키는 등 시민들이 대혼란에 빠졌다.
비상발전기가 준비되지 않은 중소기업체에서는 공장가동이 중단돼 생산차질이 빚어 졌다. 일부 기업체는 생산원료를 모두 폐기하는 상황을 맞는 등 피해도 속출했다.
대학들은 수시모집 원서마감을 연기했고 학력고사 준비로 바쁜 대도시 고3수험생들은 야간 자율학습까지 포기하고 일찍 귀가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사회 혼란
○…포항시교통정보센터에 따르면 오후 4시 56분 현재 포항시 전체 신호등의 30%인 289개의 신호등이 이번 정전으로인해 작동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포항남·북부경찰서와 지구대 경찰 80여 명이 긴급투입돼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 3시40분께 대구시내 1천350여개의 교통신호기 가운데 중구 반월당과 삼덕네거리 등에 설치된 180여개가 작동을 멈추거나 점멸상태가 되면서 이 일대는 차량이 한데 뒤엉켜 큰 혼잡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대구지역 교통경찰관 전원이 비상근무에 돌입해 수신호로 차량 흐름을 이끌었지만 동구 청구네거리와 남구 대명동 일부 지역에서는 한꺼번에 진입한 차량으로 인해 교차로가 30여분이나 교통이 마비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어 오후 3시50분께 수성구 범어동 대구시교육청 건물과 주변 상가 일대에도 40여분간 정전되면서 이날 교육청 대회의실에서 실시중이던 교장·교감 연석회의가 유인물로 대체됐고 북구 검단공단, 서구 서대구공단 등에도 전기공급이 끊어져 공장 가동이 일시 중단됐다.
○…정전사태가 계속되면서 곳곳에서 엘리베이터에 갖힌 시민들의 신고가 폭주했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오후 5시 현재 엘리베이터에 갇혀 구조를 요청한 신고건수는 20건이다. 같은 시간 포항시 북구에서만 5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남부소방서 관계자는 “북부소방소로 구조요청이 많이 들어와 출동인원이 모자라 남부소방서로 지령이 내려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번 정전사태로 소방서 다음으로 문의전화가 폭주한 곳은 KT와 SK 등 인터넷 회사들로 15일 오후 3시께는 거의 모든 전화가 불통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KT 관계자는 “한전의 정전 사태로 인해 발생한 인터넷 연결 불발에 대해 문의해오는 전화가 많아 네트워크망 팀은 일일이 한전 정전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느라 다른 업무를 2시간여 동안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전국적으로 발생한 현상이다보니 문의가 폭주했다”고 설명했다.
■지역 기업체
○…포항철강관리공단 업체들은 전기공급이 갑자기 끊기자 생산을 중단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
포항철강공단 3단지내 융진 이칠석 전무는 “갑작스런 정전으로 제품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비상전력 가동을 위해 예비 발전시설을 가동하지만 정상적으로 생산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2단지 P업체 직원인 이 모(35) 씨는 “종일 작업한 데이터가 정전과 함께 컴퓨터가 꺼지면서 몽땅 날아가버렸다”면서 “업무 마감에 쫓기는 동료들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리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포항철강공단에는 이날 오후 4시까지 300여개 업체중 60개 업체가 30여분간 공장 가동을 중단했었다.
하지만 비상시에 대비해 자가발전 체제를 갖추고 있는 포스코는 이번 정전 사태에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포스코 관계자는 “생산량의 70%를 자체 전기설비시설에서 공급받고 있어 외부 정전사태에도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 전기로 업체들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전기로 특성상 한전과 단독으로 전기를 공급받고 있어 전력 대란이 일어났지만 정상적으로 전기가 공급됐다고 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체제를 가동하고 있다”고 했다.
○…예고없는 정전사태는 구미와 칠곡지역 공단업체에도 불똥이 튀었다.
정전사태에 대비해 비상전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 등 구미국가산업단지내 대규모 공장들은 피해가 없었지만 소규모 업체는 정전피해를 벗어나지 못했다.
구미시 산동면 구미국가산업단지 4단지의 한 플라스틱 성형업체 관계자는 15일 발생한 정전 사태와 관련해 큰 피해를 봤다며 하소연했다.
이 업체는 이날 오후 3시15분부터 1시간 정도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서 공장 가동이 중단돼 생산라인에 있던 원료를 모두 폐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구미국가산업단지의 한 섬유업체도 정전으로 수십억원 어치의 원료를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업종의 특성상 잠시만 정전돼도 피해가 크다”며 “예고 없이 정전으로 수십억원의 피해가 났다”고 불평했다.
특히 구미 고아읍과 장천면에 있는 개별단지 기업체와 고아농공단지 입주업체들도 정전피해를 봤다.
개별단지에 입주한 고사 관계자는 “약 50분간 정전됐는데 인조실을 만드는 업종이다 보니 정전이 되면 원료가 다 굳어서 못쓰게 된다”며 “다시 공장을 가동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피해가 막심하다”고 털어놓았다.
정전 사고는 영세 중소기업체가 밀집한 칠곡군 왜관공단 입주업체에도 피해를 줬다. 이날 정전으로 왜관공단내 200여개 입주업체 가운데 30여개 업체가 가동중단에 따른 생산 차질 등의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유통업체
○…지역 백화점과 대형유통업체들도 정전사태가 길어지자 자가 비상발전기를 가동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이마트 포항 이동점에서는 이날 오후 3시께 전체 전력 공급이 갑자기 중단돼 10여 초 동안 정전되자 자체 발전기를 가동해 긴급히 전력을 공급했다.
롯데백화점 포항점에서도 이날 오후 5시35분께 갑자기 전력 공급이 중단돼 매장 내 전등과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이 5초 동안 작동되지 않았다.
■금융기관
○…이날 오후 4시 이후 영업시간이 종료된 금융기관은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다. 대구은행 경북1본부와 한국은행 등의 금융권은 은행 자체 비상용 배터리를 긴급 가동했다. 한국은행과 대구은행 등의 관계자는 “UPS(무정전전환장치)가 있기 때문에 갑자기 전력 공급이 중단되더라도 대부분의 금융권은 이상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위 농협도 이날 현금인출기 등에도 큰 피해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이날 은행 영업점 417곳이 정전 피해를 당해 마감업무가 지연됐다. 오후 7시 현재 이 가운데 304개 영업점은 복구됐지만 113개 영업점은 아직 복구되지 못했다.
일부 보험사와 카드사 등에도 정전피해가 발생했으며, 은행 점포 밖에 있는 자동입출금기(ATMㆍCD) 역시 정전으로 일부 가동이 중단되는 피해를 봤다.
한은 지급결제망에 가입된 한 증권사는 이날 오후 4시30분부터 약 20분 동안 전력공급이 끊겨 지급결제 기능이 잠시 마비되기도 했다.
일선 창구의 업무처리가 지연되거나 원활하지 못한 탓에 고객들이 크고 작은 불편을 겪기도 했다.
■통신업체 비상근무
○…유무선 통신회사들은 15일 낮 전국 곳곳에 정전이 일어난 것과 관련, 일제히 비상시스템을 가동시켰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기지국 가동이 중단돼 휴대전화 사용이 제한되기도 했으며 초소형 중계기로 연결된 지역은 통신이 원활하지 않아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야구경기 중단
○…정전사태은 프로야구 경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15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두산 경기가 넥센이 1-0으로 앞선 1회말 공격 도중 갑자기 조명이 꺼지면서 66분 동안 중단됐다.
오후 6시44분께 외국인 타자 코리 알드리지가 타석에 나서는 순간 정전으로 목동구장의 모든 전기시설 가동이 멈췄다. 경기장이 어두워지자 나광남 주심은 곧바로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더그아웃에서 기다리던 양팀 선수들은 66분 만인 오후 7시50분께 전력 공급이 재개돼 조명이 켜지자 경기를 재개했다.
/사회부·제2사회부·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