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사건에 주민 불안… 경찰도 나몰라라
19일 오후 5시 안동 일직~의성 안평 간 중앙고속도로 옆 산자락의 한 자두 밭.
900여㎡ 남짓의 밭 한 편에 주저앉은 오춘화(66·여)씨는 기자를 보자마자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말라죽은 자두나무를 어루만지던 오씨는 “누군가 고의로 농약을 뿌려 나무가 모두 말라죽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랬다. 초록 잎이 무성한 주위 나무와 달리 오씨네 자두나무 100여 그루는 줄기와 뿌리까지 말라 죽어 있었다.
과수원 주위에 풀이 자란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을 보니 고의로 한 짓이라는 오씨의 말이 충분히 이해됐다.
지금껏 말라 죽은 것은 자두뿐 아니다. 지난 2007년 4월부터 반복적으로 집 근처 텃밭과 비닐하우스 모종, 고추 모판이 열매도 맺지 못하고 죽었다.
이상하다 싶어 5천여㎡ 의 논·밭을 도지 형식으로 남에게 빌려줬다. 그후부터 논과 밭은 별 탈이 없었다.
처음에는 농작물들이 죽은 것을 보고 화가 치밀고 괘씸했지만 긴 시간 반복되다 보니 지금은 목숨에 위태로움을 느낄 정도로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9년 전 사별한 후 혼자 농사를 짓던 오씨는 괴상한 일이 계속되자 결국 농사를 포기했다.
지금은 관절염으로 걷기조차 힘든 다리로 이 마을 저 마을 돌며 노동 품삯을 받는 게 생계의 전부다.
원인 모를 농작물 고사사건의 피해자는 오씨 말고도 또 있다.
오씨가 사는 의성군 안평면 창길리 웃질마을의 천덕필(77)씨는 “누군가 수 년 전부터 토지마다 농약을 치는 바람에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집 주위 지척에 가까운 곳의 전답도 모두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도지를 줬어요”라고 했다.
누군가 밭마다 농약을 뿌리는 바람에 천씨는 2년간 밭을 놀렸다. 어느 날은 모판 때문에 이웃집 비닐하우스를 열었다가 독한 농약냄새에 취해 드러눕기까지 했단다.
피해가 계속되자 천씨와 마을 주민들은 4년 전,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천씨는 경찰로부터 `농약문제는 반장이나 이장한테 얘기해야지 왜 날 부르냐`는 핀잔만 들었다.
급기야 천씨는 사비 17만원을 털어 흙 시료를 채취해 농업과학기술원에 보냈다.
당시 농업과학기술원이 천씨에게 보낸 감정결과서에는 시료 속에 고독성 가루 제초제인 `알라 라쇼`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본지 취재 결과 오씨와 천씨뿐 아니라 이 마을 2곳의 농가가 같은 손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땅이 있어도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처지의 웃질 마을 농민들. 겉보기에는 평온한 산골마을이지만 수년째 반복되는 해괴한 사건에 주민들은 농사는 고사하고 혹시 사람도 다치지 않을까 매일 매일이 불안하다.
/김현묵·권광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