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집안(集安)시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을 하였지만, 국내 여행사를 통한 고구려 유적 답사의 일정은 백두산을 제외하면 70%의 일정이 집안 시 일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집안 시에 대한 설명을 좀 더 자세히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집안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로서 424년간(3∼427년)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다. 4세기가 넘도록 고구려는 이 소도시(현 인구 20만 명)에서 거대한 중국의 침략을 저지하면서 대제국을 건설 하였던 것이다. 현재 집안 시 일원에 남아있는 1만2천여기의 고분은 고구려의 웅장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20여기의 고분벽화는 우수한 과학성과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민족 예술의 기원이나 특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집안 시는 서·북으로 혼 강과 동·남으로 압록강으로 막힌 분지로서 외부의 적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리왕 22년(AD 3년)에 졸본성에서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긴 후 400여 년간 고구려 수도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환도산성(丸都山城)은 집안시 국내성에서 북쪽으로 2.5km 떨어진 높은 산에 자리 잡고 있다. 고구려 성은 평지성과 산성이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성이 평지성(平地城)이므로 유사시에는 환도산성이 피난 수도로서, 평소에는 군량미의 저축과 국내성을 방어하는 위성(衛城)의 기능을 하였다.
그러나 환도산성은 단순한 국내성의 위성으로 서뿐만 아니라, 2차에 걸친 임시 수도로서 고구려의 정치. 군사적 중심지인 동시에 국내성으로 들어오는 최후 통제소와 서진정책을 지휘하는 심장부 역할도 하였다.
환도산성은 해발 676m의 최고봉을 중심으로 몇 개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산 능선에 쌓은 석성이다. 산성의 동, 서, 북 3면은 높은 절벽에 막혀있고 남쪽만이 트여있다. 산성은 동. 서북 산 능선을 따라 남쪽까지 연결하였으며, 총 길이는 6천591m에 이른다.
환도산성 입구에서 동쪽으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고분 밀집지역이 있다. 환도산성의 아랫부분에 있다하여 일반적으로 산성하고분군(山城下古墳群)으로 많이 불리는데 중국의 공식 명칭은 ‘집안 통구 고분군 산성하묘구’이다. 산성하고분군은 돌무지무덤, 돌방무덤, 돌방봉토벽화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통구 고분군 중 우산하 묘구에 이어 대형 돌무지무덤과 돌방봉토벽화고분이 많이 분포한다.
대형의 계단 돌무지무덤으로는 절천정총(切天井塚)과 형총(兄塚), 제총(第塚)이 돌방봉토벽화고분으로는 미인총, 귀갑총(龜甲塚), 산성하 983호와 332호 등이 대표적이다.
평지성으로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國內城)은 현재 집안 시 서쪽부분에 해당된다. 국내성은 환도산성과 함께 우리 역사상 축성 연대가 확실한 최초의 도성이다.
국내성은 압록강과 통구하(通溝河)가 합류하는 분지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방 1km에 우산(禹山), 동방 6km에 용산(龍山), 그리고 통구 하를 건너 서방 1.5km에 칠성 산이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천연요새이다. 서쪽 성벽 바깥으로는 통구하가 흐르고 남쪽에는 동에서 서로 흘러 들어가는 천연 해자(垓子)―성벽주위에 흐르는 강이나 하천으로 방어선의 역할을 한다―가 있어 성의 방위 능력을 높여주었다.
성의 동·북쪽에도 말라버린 해자가 해방 초기만 하더라도 분명히 볼 수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주택가가 되어 버렸다. 국내성의 실측도에 의하면 사각형의 평지성이다. 본래 성벽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치(稚)가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기록에 의하면 북벽에 8개, 동·서·남벽에 각 각 2개씩 모두 14개가 있었다고 한다. 치는 성벽에 돌출된 부분을 만들어 3면에서 성벽에 오르는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건축된 부분으로 고구려 성벽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국내성을 중심으로 한 집안 일대의 성들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국내성과 그 교통로를 보호하는 차단성(遮斷城)의 역할을 하여 환도산성, 국내성과 함께 유기적으로 이룩된 도성체제를 특징으로 한다. 차단성(遮斷城)은 변방에서 영토 확장이나 국토수호의 관문이 되고, 국내성과 환도산성은 왕궁과 중앙정부에 대한 최후 보존의 기능을 지닌 것이다.
집안 시 일원의 고구려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야 발굴과 복원이 제대로 이뤄져서 주거지에 밀집되어 있던 국내성의 유적은 주택가와 아파트 개발로 거의 사라졌고, 지금은 아파트 단지 앞의 북벽만이 이곳이 국내성의 자리였음을 짐작케 해주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의 성벽. 국내성은 현재 집안시의 서쪽부분에 해당되는데, 환도산성과 함께 우리 역사상 축성 연대가 확실한 최초의 도성이다. 지금은 성벽만 남아있고,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주택가로 개발이 되어있다. 성벽의 높이는 10여m였으나, 지금은 2m 정도의 높이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