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기념식을 처음으로 거행한 것은 1926년이다. 이 해는 1446년 한글이 반포된 이후 8회갑(480돌)이 되는 해다.
기념식은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와 신민사의 공동 주최로 식도원(食道園)이라는 요릿집에서 거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1926년에 기념식을 거행한 날은 10월 9일이 아니라 11월 4일이었다. 이 날이 음력으로 9월 29일이었기 때문이다.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을 책자로 완성했다는 실록의 기록에 근거하여 9월29일을 반포한 날로 보고 기념식을 거행한 것이다.
10월9일에 공개적으로 기념식을 거행하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인 1945년부터이다. 한글날이 10월9일로 된 것은 1940년 7월에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에 나오는 기록에 의한다.
이 책에 실린 정인지의 서문에 9월 상한(上澣)이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기록에 따라 9월 상한, 즉 상순(上旬)에 반포된 것으로 보고 9월 상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다시 계산한 것이다.
공휴일로 지정된 것도 이 무렵인데, 아쉽게도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되어 지금에 이른다.
문제는 훈민정음 원문의 서문 해석이다. 우리가 국어시간에 배운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만들게 된 계기를 적은 서문은 “국지어음 이호중국 여문자불상유통 고우민유소욕언 이종부득신기정자다의 여위차민연 신제이십팔자 욕사인인이습 편어일용이(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
이 원문을 해석하면,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자기의 뜻을 얻어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나니 사람마다 쉽게 익히게 하여 날마다 사용함에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따름이다” 로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국지어음 이호중국, 여문자불상유통(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의 해석이다. 國之語音 異乎中國을 풀이하면 “나라에서 누구나 쓰는 일상의 말이 나라 안(나라의 중심)에서 쓰는 말과 달라 즉 조정(국가기관)에서 문자로 쓰는 말(문자)하고 다르므로”가 바른 해석이다.
여기서 국지어음이란 “나라에서 누구나 다 함께 보편적으로 쓰는 말소리”란 뜻으로 “조선말”과 “중국말”이 서로 다르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어조사(토씨) “호(乎)”는 “∼에서/∼에서조차”의 뜻이지, “∼과/∼와”란 뜻이 아니다.
중국이란 나라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신해혁명 이후이다. 당시 조선은 지금의 중국을 명국(明國:명나라)으로 불렀다.
다음으로 “여문자불상유통(與文字不相流通)”은 “여문자 불 상유통”이라고 띄워 읽어야 한다. 여문자란 나라의 말소리와 그 말소리를 적는 문자를 말한다.
여기서 문(文)은 우리가 말하는 내용과 그 소리를 말하고 자(字)는 그 말과 소리를 적는 글, 즉, 문자를 말하는 것이다.
여문자 즉 입에서 나오는 말과 그 말을 적는 문자가 상유통(相流通) 서로 같게 유통되어야 하는데 같지 않음으로 불상유통(不相流通) 서로 유통이 안 된다는 뜻이다.
즉 당시 사용하던 문자와 말이 서로 다름으로 사람이 말하는 그대로를 적을 수 없다라는 것이다.
이런 관계로 모든 백성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남에게 전할 때 자기가 한 말(소리)을 그대로 적어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바른 소리글자 28자를 백성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민족 언어인 훈민정음의 창제 당위성을 기록한 훈민정음 서문을 일부 기득권층의 한글학자들이 잘못 풀이하고, 잘못 가르치고, 잘못 외워버렸기 때문에 그 진실을 중국의 사대주의와 일제식민사관으로 덮고 있는 것이다.
올해로 훈민정음 반포 562돌 한글날을 맞았다. 한 민족의 독창적인 언어는 그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때만 되면 해마다 나라 곳곳에서 치러지는 한글날 창제 기념행사도 중요하지만 이제 훈민정음 서문의 올바른 해석으로 우리 민족사에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인 한글을 창제반포하신 세종대왕의 높은 뜻을 기리고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 독창성을 세계 속에 선양하는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켜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