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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가 여름 100일을 밝힌다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3-08-01 16:09 게재일 2023-08-0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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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기계면 현내리 두봉산 기슭에 울창<br/>‘도원정사’·‘종오정’ 등 꽃내림 풍경 유혹
도원정사의 연꽃과 배롱나무 풍경.
비가 자주 내린다. 장마라고 하기엔 이젠 스콜이라고 불러야 하나 싶게 소나기가 자주 내린다.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노라니 여름꽃이 한창이다. 100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고 해서 백일홍이란 이름 붙여진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곳이 여러 곳 눈에 들어온다. 기계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원정사가 그중에 하나이다.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현내리 두봉산(頭峰山)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았다. 조선 중기의 학자 이말동(李末仝)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였는데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 주위로 소나무와 은행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연잎이 가득한 연못이 마당 가운데 중심을 잡고 앉았다. 배롱나무가 연못 가까이 비탈진 곳에서 가지를 뻗어 정원과 잘 어우러져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연못이 반긴다. 이 집의 주인이 연못이라 해도 될 정도이다. 그 못을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연잎이 가득해 물이 안보일 정도다. 조금 전 소나기가 지나간 연잎에 구슬 같은 물방울이 고였다. 물방울 사이사이 붉은 배롱나무의 꽃잎이 떨어져 서로 잘 어울어진다. 비 오는 날 특히 찾아오라고 꾸며놓은 후손들을 위한 선물이다.

연못을 건너가기에 좋도록 나무다리가 놓였다. 다리 위도 붉다. 배롱나무의 품이 넓어서인지 빗줄기에 맞아 낙화한 흔적이 곱다. 밟기에 아까워 살포시 지나야 한다. 도원정사에 모신 이말동은 1480년(성종 11)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연산군이 즉위하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포항의 기계(杞溪)에 은거하며 많은 시문을 남겼다. 선비들이 좋아한 나무가 배롱나무요, 즐겨한 꽃이 연꽃이라 정자를 꾸밀 때 두 가지 꽃을 다 심었으리라.

기와를 얹은 담장에도 붉은 꽃잎이 내렸다. 집안 둘레에 심은 배롱나무가 나무에도 바닥에도 자신만의 색깔로 물들였다. 비가 지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라 붉은색이 더 진하다. 햇살이 없어서 천천히 마르며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꽃내림을 더 오래 보여준다.

도원정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배롱나무 맛집이 또 있다. 종오정이다. 종오정이 있는 마을은 손곡마을 중에서도 연정마을이라고 한다. 정자가 있는 연못가의 마을이다. 정자에서 보면 연꽃 가득한 연못이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오래된 측백나무와 못 안으로 길게 누운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연못 바로 옆에 선 까닭에 가지의 반은 연못의 연잎을 어루만지고 반은 종오정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맞이하려고 길 입구에 늘어뜨렸다. 가지 끝이 흙길에 닿을 듯 말 듯 바람에 살랑이며 며칠 먼저 핀 꽃잎을 흘렸다. 레드카펫을 깔아두고 손님을 맞이한다. 고택 체험을 하러 온 사람들이 꽃을 보며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서 고택에서 느끼는 약간의 불편함마저 즐기게 만든다.

종오정은 주인이 살지 않는 빈집이 아니라, 늘 사람이 드나드는 살아있는 집이다. 머물다간 이들의 후기를 보면 아침에 일어나 연못이 보이는 창을 열고 커피 한 잔 내려서 마시며 연꽃과 배롱나무를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고 적었다. 또 어떤 이는 시골 할머니 집 온돌방에 엎드려 과일 먹으며 보냈던 방학이 떠올라 할머니 집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했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찾아가 볼 배롱나무 성지가 더 있다. 포항 가까이 대구에 있는 신숭겸 장군 유적지, 하목정, 육신사 가실성당 등속이다. 그중에 하목정에는 후손이 머물며 관람객을 맞고 가실성당 또한 예배 장소로 열려있다. 한옥을 오래 보존하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이 사람의 발길 손길 입김이라고 했다. 종오정처럼 도원정사도 사람의 눈길을 받아 살아 숨 쉬면서 오래 우리 곁에 남아있길 바란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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