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당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고막이 찢어지는 고통을…”
저는 전투기 소음으로 유명한 대구시 북구 검단동에 삽니다. 이곳에서 산지 벌써 33년이 지났죠. 친했던 이웃들은 이곳이 살기 힘든 곳이라며 하나 둘 떠났지만 전 이곳에 남았습니다. 이곳에 직장이 있었고 결혼도 했고 아이 둘이 모두 커서일까요. 내가 이곳 외의 다른 곳에 산다는 건 쉽게 상상이 안 갑니다.
이곳에 처음 와 직장인 한일합섬공장에서 공사를 할 때로 기억되네요. 동료와 기계를 옮기는 작업 중 비행기 소음에 둘의 대화가 끊겨 동료와 난 크게 다칠 뻔했습니다. 다행히 약간의 찰과상 외엔 이상이 없었지만 우리는 그 이후 비행기가 지나간 다음에야 대화를 이어가는 버릇이 생겼죠.
큰딸이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 조그만 손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날 쳐다볼 때 얼마나 행복했던지.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비행기가 지나가면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듯 우는 딸아이로 인해 제 마음은 늘 불편했습니다. 비행기 다가오는 소리에 저는 제 손을 아이의 귀를 막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죠.
두 아이가 커 학교에 들어간 후, 비행기 소음으로 수업이 자꾸 끊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남들은 아이들 교육을 위해 집도 판다는데 나는 해줄 것이 없었죠. 당시의 사정상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혹시라도 성적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이들이 무사히 자라줘 고마울 뿐입니다.
둘째가 고등학교 때 갑자기 귀가 아프다고 해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는 원인을 모르겠다며 좀 더 살펴보자고 말했죠. 혹시라도 비행기 소음 때문은 아닌지 지켜보는 내 가슴은 구겨지고 찢어졌습니다.
이웃들이 집을 팔기 위해 내놓았지만 비행기 소음으로 계약을 파기 당하는 것을 보면 슬픔은 더해졌습니다. 떠나고 싶어도 쉽게 떠날 수 없는 현실과 이런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장성했고 저는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딸은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됐고 아들은 교사가 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죠. 더워도 소음으로 창문을 닫고 산지 30년. 이런 환경에서 무사히 커 준 아이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이번 추석, 4살 된 외손녀가 집에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비행기 소음에 놀란 손녀는 내게 뛰어왔습니다. 저는 수십 년 전 딸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 손을 아이의 귀에 살며시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알고 있습니다. 내 손으로는 전투기의 소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젠 정말 다른 곳으로 떠나야할 것 같습니다.
대구 북구 검단동이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정국영(59)씨는 “이번 판결이 주민들에게 조금의 위안을 될 수 있겠지만 비행장이 이전되지 않는 한 이곳 주민의 삶이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비행장이 빨리 이전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문석준기자 pressmoo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