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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기-똘레도의 붓, 엘 그레꼬

권종락 기자
등록일 2005-02-19 18:11 게재일 200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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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호 강변에서 바라다 본 똘레도.
마드리드 남쪽으로 버스는 달린다. 저 멀리 오른쪽으로 언덕 도시 똘레도가 보인다. 로마시대이래 둔덕을 따라 자연스레 형성된 성곽도시이다. 중세의 자연미가 온전히 살아있는 그곳을 웰빙도시라 부르고 싶었다.


똘레도는 6세기에 이르러 서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면서 성장기를 맞이했다. 여러 지배 세력을 거치면서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이 공존하는 도시가 되었다. 한마디로 똘레도는 융합의 도시라 불릴만하다. 문화면에서 고딕양식, 로마네스크 양식뿐만 아니라 서양과 이슬람의 만남인 무데하르 양식도 이 도시의 특징 중 하나라고 했다. 무데하르 양식의 대표적인 유적이 ‘산띠아고 델 아라발 교회’이다. 이 도시가 내뿜는 이슬람 색체가 싫어 펠리페 2세는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겨버렸다니 새삼 이베리아 반도에 끼친 무어인들의 영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똘레도에서 화가 엘 그레꼬를 빼놓는 것은 소 빠진 만두 같지 않을까. 벨라스케스, 고야와 더불어 스페인 회화의 삼대 거장이라 불리는 엘 그레꼬는 단연 똘레도를 위한 화가였다. 스페인 여행이 아니었다면 그 위대한 화가를 평생 알지 못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크레타 섬 출신의 화가는 이곳에 정착해서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엘 그레꼬가 된다. 고향에서 간섭 당하고 홀대받던 화가는 똘레도에서 진정한 화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위대한 그리스인이 똘레도의 친구가 되는 순간이었다.


‘크레타는 그에게 생명을 부여했고, 똘레도는 그에게 붓을 선사했다’는 한 시인의 말을 되새기기 위해 산토 토메 성당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면 그의 대표작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볼 수 있다. 그 그림 하나만을 위해 똘레도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들 열중했다. 교회 재정에 큰 기여를 했던 한 백작의 장례식에 관한 전설을 그린 이 그림은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라는 점이 그러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성인 두 분이 친히 시신을 수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 모든 것을 하늘에서는 내려다보고 있다. 오르가스 백작이 죽은지 이백여 년이 훨씬 지난 16세기에 그 전설은 그림으로 살아났다. 운명과도 같은, 엘 그레꼬를 위한 똘레도의 가장 멋진 붓 선물이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 풍경답게 그림은 대체적으로 검은 색 톤이다. 숙연함과 비장미가 묻어나는 그림이 부드럽게 읽히는 건, 숨은 그림 찾기같은 에피소드 때문일 것이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에는 엘 그레꼬 자화상과 그의 아들 초상화가 숨어있다. 왼쪽 성인 바로 위에서 뚫어져라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엘 그레꼬 본인이라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화가는 그의 아들까지 그림에 등장시켰다. 아들은 왼쪽 앞에서 횃불을 들고 오르가스 백작의 시신을 가리키고 있다. 아들의 검은 옷 주머니에서 삐죽 나온 하얀 손수건에는 깨알같은 글씨가 숨어있다. 거기에는 아들의 생년월일과 그리스어로 된 엘 그레꼬의 서명이 적혀있단다. 이 얼마나 재치 만점인 사람인가. 자신의 존재증명 같은 숨은 그림 찾기를 남긴다는 것은 분명 관람객에게는 흥미 있는 일이다. 그림이 제시하는 종교적 세계관은 덮어두고라도, 인간적 본능에 충실한 그 유머에는 절로 공감이 인다. 이런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목도하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똘레도 언덕을 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똘레도는 따호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게 제격이다. 우리로 치자면, 물도리에 휩싸인 하회마을을 언덕 위에 옮겨다 놓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강 너머 작은 도시는 성장을 거부한 아이처럼 붉은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우뚝 솟은 대성당과 수도원 그리고 병풍 같은 따호강을 앵글 속에 담느라 모두들 분주했다. 그 살가운 풍경 속으로 한 시대를 살아간 화가의 갸름한 얼굴이 얼비친다. 그도 중세의 다리를 건너 이 맞은 편 언덕에서 똘레도를 향한 숭고한 붓질을 구상했을 것이다.


엘 그레꼬의 검은 그림처럼 언덕 도시엔 오후 그림자가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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