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남자 한 명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 수치로 6.6㎡. 14인치 텔레비전과 낡은 선풍기 1대가 전부. 여름철 평균 실내온도는 바깥 온도보다 3∼4도 높음. 특징은 고온 다습, 해묵은 홀아비 냄새와 악취.
2007년 대한민국 쪽방촌의 모습이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여름. 쪽방 사람들은 찜통더위 속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그들의 공간을 찾았다.
가을의 문턱인 ‘처서’를 하루 앞둔 22일 오후 3시. 동대구역 인근 한 쪽방촌. 이날 낮 최고기온은 33.2도였지만 쪽방의 온도는 36도. 좁은 공간 탓인지 숨이 턱턱 막혔다. 등줄기의 땀은 소나기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선풍기도 틀고, 창문을 열어놔도 방안의 온도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이 공간에 사는 최현철(가명·38)씨는 이곳을 ‘한증막’이라고 표현했다. 속옷만 달랑 걸친 최씨의 얼굴에도 굵은 땀방울이 연방 흘러내렸다. 깨끗하게 세탁한 마른 수건도 금세 최씨의 짭조름한 물기를 머금어버렸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늘 속옷 1장 달랑 입고 생활한다고. 나름의 생존법칙이다. 부엌이 없는 이 공간에서 요리는 엄두도 못 낸다. 1회용 가스레인지로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려면 방안 온도는 급상승. 선선해지는 밤시간이 돼야 라면이라도 겨우 끓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즘엔 열대야가 심해 소주 1병으로 요기를 때우거나 굶기 일쑤다. 인근에는 저녁시간대 무료급식이 없기 때문. 이날 낮에는 12명의 쪽방 가족들 중 2명만이 남아있었다. 일부는 모처럼 기회를 잡은 막노동 일을 나섰고, 나머지는 지하철 동대구역과 동촌유원지에 피서를 떠났다. 또 다른 1명은 며칠 전부터 더위를 호소하다 이 공간을 떠나버렸다. 남은 2명은 고혈압, 관절염 등 지병으로 인해 외출을 포기했다. 그냥 더위에 온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선풍기 모터소리를 자장가 삼아 흐르는 땀 줄기도 귀찮은 듯 낮잠만 청할 뿐이었다. 그래도 낮잠을 청하지 못하면 공동샤워장으로 향했다. 쪽방촌 사람들이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유일한 시설이다. 1층과 2층에는 각각 1개씩의 공동샤워장이 있다. 말이 샤워장이지 1평 공간에 수도꼭지 2개가 전부다. 졸졸거리며 흘러나오는 수돗물도 한참을 기다려야 미지근함이 가신다. 이 대목에선 인내심과 기다림만이 최우선 덕목이다.
여기까지가 쪽방촌 사람들이 폭염과 열대야에 대처하는 유일한 무기다. 더 이상은 바랄 수도 없고, 바라지도 않는다.
최현철씨의 하소연이다.
"한여름의 쪽방은 교도소보다 더한 곳입니다. 차라리 겨울에는 연탄불 온기라도 있지만 더위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고통입니다. 사실 겨울철보다 여름철에 더욱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여름이, 이 고통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배준수기자 jsbae@kbmaeil.com
지난 21일 아침 9시에서야 눈이 떠졌다. 밤새 열대야로 잠을 설친 탓이다. 헤어진 가족생각에 올 여름 더위는 유난히 더 힘겹다. 쪽방엔 그 흔한 선풍기도 없어 방안 전체가 후끈거린다. 며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정신이 몽롱하다.
방안엔 옷과 이불만이 바닥을 뒹굴고 있다. 서랍장 위의 소형TV가 그나마 이곳이 사람 사는 곳임을 증명해 준다. 방 한구석엔 언제 먹다 남긴 것인지 모를 소주병과 과자봉지가 있다.
잠을 이기기 위해 세수를 했다. 아침을 먹어본 기억은 오래다. 늦더위를 피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하루 중 유일한 낙인 친구들과의 만남도 거기서 이뤄진다.
쪽방에서 20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지하철 동대구역 광장의 벤치.
이미 와있던 5명의 친구가 반갑게 인사했다. 어젯밤 이곳 벤치에서 자거나 동대구역 대합실에서 밤을 보낸 사람들이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형이자 친구들이다. 다들 더위에 지친 듯 얼굴색이 안 좋다.
정오가 되자 이곳의 멤버 10여 명이 모두 모였다. 하지만 오늘은 운이 나쁜 날이다. 점심을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땐 빵이라도 먹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없다. 허기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 벤치에 누웠다.
오늘도 여전히 무덥다. 비가 온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땡볕은 그대로 누운 벤치를 달군다. 이 시간엔 나무그늘도 없다. 목에 물을 머금은 흰 수건은 더위를 식혀주는 유일한 도구다. 수건으로 연신 얼굴을 훔친다. 모두 힘들어하는 순간 누군가 소주를 사왔다. 유일하게 사치라고 부르는 시간이다.
소주잔이 오가고 취기가 오른다. 더위 때문에 더 심한 것 같다. 어느새 술에 취한 동료가 말다툼을 시작했다.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다. 옆에 있는 ‘구세군 동대구 상담센터’에 물을 뜨러간다며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누군가 “이들과 같이 있으면 친형제보다 더 편하다. 같이 이해하고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내겐 얼마나 큰 행복인지 다른 사람은 모를 것이다”고 중얼거렸다.
내가 요즘 가장 바라는 것은 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대구역 주변엔 저녁을 매일 주지만 이곳은 날짜별로 달라 끼니 챙기기가 힘들다.
7시가 넘어가자 하늘은 붉은 색으로 물들고 있다. 아직은 상당히 덥지만 오늘은 일찍 들어가기로 한다. 보고 싶은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힘겨운 하루가 끝나간다.
박성규(가명·36)씨. 2004년부터 노숙자 삶을 시작했단다. 더위는 그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한다고 했다. 그래도 추운 겨울보다는 낫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는 노숙자에 대한 관심이 준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해가진 골목길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이 안타깝다.
??/문석준기자 pressmoo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