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8일 6·25전쟁 발발 직전 국군이 민간인들에게 자행한 `문경학살사건` 피해자 유족인 채모(73)씨 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총 10억3천만원을 배상하라며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 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점에 비춰볼 때 원고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진실을 은폐하고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조차 게을리 한 국가가 제때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며 시효 종료를 이유로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문경학살사건은 1949년 12월24일 국군 2개 소대 병력이 공산주의자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 석달마을 주민 100여명을 모아놓고 무차별 총격을 가해 어린이와 부녀자를 포함해 86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후 무장공비에 의한 학살극으로 위장됐지만 진실은 밝혀졌고, 당시 국군은 마을에서 환영받지 못하자 보복한 것으로 드러났었다.
유족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자 2008년 7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하지만 1,2심 재판부는 손해배상 청구권의 시효(5년)가 1954년 12월로 이미 끝나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같은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어 구제의 길을 터줬다. 대법원은 지난 6월에도 울산보도연맹 회원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번과 같은 취지로 유족의 손을 들어줬었다.
문경/신승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