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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불운이 교차하는 스포츠 변칙에는 운이 안 따르는 법

이경우 기자
등록일 2011-08-31 22:32 게재일 2011-08-3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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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m 앞에 골인점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그 너머로 응원하러 달려온 국민들이 붉은 오성홍기를 흔든다. `황색탄환`이라 부르며 한국인들도 아시아인의 승리를 바라니, 흡사 홈구장의 느낌이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땀이 축축하게 잡혔다. 부상이 괴롭혔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어 오늘은 만족스러웠다. 준결승에서 로블레스를 간발의 차로 눌렀다. 저 녀석과 올리버가 나의 라이벌이라는데, 나는 성장이 무서운 리차드슨을 더 경계한다. 승리를 확신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어제 원반던지기로 금메달을 딴 리얀펑은 의용군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시상대에서 오성홍기를 경건히 바라본다. 오늘은 나를 위한 날이다.

일곱 걸음을 달린 후 첫 허들을 넘고 리듬을 안 잃고 세 걸음 만에 다시 허들을 넘으며 모두 열 개를 넘어야 한다. 총성이 울렸다. 내 몸은 본능적으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늘 그렇듯 출발은 늦었다. 있는 힘을 다해 여덟 개의 허들을 넘었다. 이제 완전히 선두를 되찾았다. 아홉 개의 허들을 넘는 찰라, 로블레스의 오른손이 내 왼손을 후려쳤다. 순식간에 몸이 흐트러졌다. 끝이다. 마지막 허들이 허벅지에 닿는 순간 가속을 잃고 내 몸은 슬로우 모션처럼 꺼져 내렸다. 가슴을 내밀었지만 로블레스와 리차드슨은 저만치 결승선을 넘어 달아났다. 참 지지리도 운이 안 따라준다.

류시앙의 시각에서 재구성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 로블레스의 반칙이 드러나 은메달을 땄지만 다 딴 금메달을 놓친 아쉬움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그날, 경기장에서 류시앙은 홈그라운드나 다를 바 없는 응원을 받았다. 때문에 마지막에 가속이 막히는 순간 아쉬운 탄식이 관중석에서 쏟아졌다.

흔히 `운`이 따른다는 표현을 한다.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은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 한다. 운과 불운은 찰나에 교차한다. 운이 따르는 선수가 있다면 불운에 땅을 치는 선수도 있기 마련이다.

이날 류시앙과 더불어 가장 불운했던 사나이들은 장대높이뛰기에서 나왔다. 체코의 얀 쿠들리카는 장대가 부러지면서 옆구리를 맞고 그대로 매트로 추락했다. 잠시 후에 출전한 러시아의 스타로두브세프의 장대도 부러졌다. 장대는 카본섬유나 유리섬유 재질로 만들어져 선수들이 바를 넘을 때 탄력을 준다. 가장 믿음직한 도구의 배신으로 두 선수는 메달 권에서 탈락했다.

종목별로도 운과 불운이 교차된다. 함께 열린 남자 해머던지기와 여자 포환던지기 결승이 바로 그것이다. 해머던지기는 강한 원심력으로 통상 80m 내외의 거리를 날아가며 호쾌함을 준다. 땅에 떨어지는 순간, 강한 충격으로 포탄을 맞은 듯 잔디가 움푹 파인다. 일본의 무로후시 선수가 던진 81m의 낙하지점에는 독보적으로 오랫동안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바로 옆의 여자 포환던지기 경기는 21m 내외의 짧은 비행거리로 말미암아 관중의 시선을 잡아끌기에는 역부족이다. 투창이나 원반던지기처럼 사뭇 다른 종목이면 비교가 덜하지만, 관중석과의 거리마저 멀어 상대적으로 초라함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같은 무대에서 받는 불운의 일종이 아닐까? 선수로 보자면 남자 해머의 무로후시는 첫 우승이니 좋은 운이었고, 여자 포환의 아담스는 의심할 여지없는 최강자인 탓에 불운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여자 400m의 몬트쇼는 육상단거리에서 미국을 누르고 조국 보츠와나에 첫 금메달을 바치며 아프리카 단거리에 이정표를 남겼으니 운을 개척한 경우이다. 반면 `지면 죽는다`는 각오로 자메이카의 삼면 포위를 뚫고 미국에 단거리 첫 금메달을 선사한 지터는 운을 지켜낸 경우이다.

30일 현재 신문을 펼치면, 포위망을 벗어난 카다피 일가는 불행 중 운이 따른 편이고, 서울시 교육감 곽노현은 불운이니 스포츠든 사회활동이든 변칙에는 운이 안 따르는 법이다.

일기 예보를 보면 대구세계육상대회의 가장 큰 근심거리였던 태풍운은 좋아 보인다.

11호 태풍 난마돌은 소멸할 예정이고 12호 태풍 탈라스는 미안하긴 하지만 일본으로 상륙한다고 한다. 대회는 좋은 운이 따르고 있으니 남은 경기를 즐기면 된다. 아직 좋은 운은 반도 안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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