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무덤 황구하
경주 봉황대 앞 잔디밭에 앉아있는데
소매 끝에 가시하나 꽂혀있어 무심코 집어 뺐더니
찔끔, 개나리꽃빛 물 터져 나왔다.
그러고 보니 벌레 두 마리 머릴 맞대고
무슨 궁리라도 하는 중이었는지
한 마리 사라지니 남은 한 녀석
제 몸 꿋꿋이 세워
영락없는 도깨비바늘 모양을 하는 것이다
그걸 손으로 떼어내자니
찰나, 또 흔적도 없어지면 거듭 미안한 일
소매 끝에 계속 달고 있자니
저도 몸 누일만한 언덕이거나
미덥기가 어머니 품만큼은 되어야
집 한 채 틀지 싶은 것이다
가만히 손울 내려놓고
수백 년 동안 느티나무를 젖 물리고 있는
봉황대 한참 마주하자니
그 벌레, 제 몸 밀고 밀어
손등을 내려가고 있었다
낮게 낮게 나를 끌고 가고 있었다
사람의 집은 물론 벌레의 집, 세상에서 움직이는 것들은 으레 집을 들인다. 시를 읽다보면 미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섬세하게 보인다. 손등에서 나를 끌고 낮은 곳으로 가는 벌레 앞에 시인은 우주를 발견하는 힘을 갖게 된다.
해설 <하재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