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 멜랑콜리를 위한 오브제로 생명을 얻다
해골, 멜랑콜리를 위한 오브제로 생명을 얻다
  • 등록일 2020.09.23 19:12
  • 게재일 2020.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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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메이드 인 대구’ 전시회 앞둔 권정호 화백
대구 출생 1960년대 미대 1세대이자
세계적 명문 미술대학원 유학 1세대
美 대학원 시절 백남준 등과 함께 전시활동
평창동계올림픽아트페스타 행사도 진행
지역작가 8인과 함께하는 전시회서
3060 해골 형상 큐브 작품 등 선보여
권정호 화백에게 두개골은 물상이 아니라 세상의 문화를 발전시킨 인간의 두상으로 다가왔다.

대구에 세계적인 화백이 계신다. ‘메이드 인 대구’라는 큰 전시회를 앞두고 참여 작가 8인 중 한 분이신 권정호 화백을 만났다. 뉴욕과 상해미술관, 인도, 일본 등 국제적으로 활동해온 화백의 작품을 대구미술관에서 보게 된 것은 지역의 큰 기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가 권정호 화백의 예술 인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회가 될 것으로 예감한다.

대구 출신이고 대구에 거주하는 화백의 작업실은 오층 건물 맨 위층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서 문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왈칵 다가오는 해골과 맞닥뜨렸다. 닥종이로 만든 수많은 해골 모형이 상자에 가득 담겨 있었다. 화백은 그 중 하나를 집어 가는 붓으로 색을 칠하고 있었다. 커다란 통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그 통을 가득 채운 희고 노랗고 파랗고 붉은 닥종이 해골이 화백의 오랜 작업과정을 짐작하게 했다. 해골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강렬한 두드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단 낯설다.’ 평면 그림이 아닌 조형예술이고 내용이 해골이어서 더욱 그렇다. 그 해골 모형에서 얼른 ‘죽음’을 떠올린 건 내 선입견일지도 모른다.

 

“반성적 거울 이미지라고 할까요? 인간의 정서를 대신한

상징적인 두개골 형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유한하고 불안한 존재인 현대인들의 억압된 갈등과

근원적 죽음을 표현해 내고자 했어요”

화백은 그 많은 두개골 모양의 형이상학적인 조형물을 대구미술관 전시실 천장에 낚싯줄로 매달 거라고 했다. 길고 짧게 드리워진 물상들이 만들어내는 카타콤 같은 비밀스러움이 상상된다. 3060개의 두개골 모형이 천장에서 내려와 사각형 큐브를 이룬다는 상상만으로 충분히 그로테스크하다. 그 신선한 충격이 내게 예술과 원시적 형이상학 사이의 간극과 죽음의 형상을 떠올리게 했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를 그린 작품 앞에서 찍은 화백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불에 탄 열차와 검고 흰 선들이 지하철 안에 있었던 원혼들의 말없는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모든 예술이 그런 것 아닌가. 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각자의 의식에 적재된 심상에 비추어 사물을 보게 되는 그런 것.

“해골 형상으로 말하고자 하신 바가 무엇입니까?”

“반성적 거울 이미지라고 할까요?”

화백은 인간의 정서를 대신한 상징적인 두개골 형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유한하고 불안한 존재인 현대인들의 억압된 갈등과 근원적 죽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해골의 형상 속에 깃든 철학적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을 대면시키고자 했다고 언급한다. 형식 속에 정신을 심고 정신 속에 형식을 만들며.

화백은 계명대 미술대를 졸업하고, 대구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회화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에 미국의 프랫인스티튜드 대학원 회화과에 입학했다. 예술 창작이 하나의 정신적 활동이며 시간과 공간, 영원성에 관계한다고 말씀하신다. 화백의 작품 세계를 검색하다 아주 인상적인 영상을 하나 보았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이루어진 ‘파이어 아트페스타 2018 헌화가(獻火歌)’ 행사였다. 거기서 화백은‘염원 - 헌화가’라는 제목으로, 가로 410㎝ 세로 600㎝ 높이 600㎝ 크기의 나무로 만든 작품을 내놓았다.

“헌화가의 착상을 어디서 얻으셨어요?”

“신라 향가 헌화가(獻花歌)에서 착안한 작품인데, 제목이 일러준 대로 꽃을 들고 비녀를 한 여인의 형상입니다.”

파이어가 실행되며 작품에 불을 붙였다. 작품이 활활 타올랐다. 마지막까지 깨끗이 타버리는 것으로 화려하게 승화한 여인의 형상이 재로 남는 과정으로 예술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했다. 마침내 사라지는 무(無)의 세계.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우주적 시간이 그러하고, 인간의 삶이 그러하고, 예술가가 피땀 흘려 이뤄낸 작품이 그러하고, 불꽃으로 스러진 헌화가가 그렇게 無로 남았다. 그럼 無가 단순히 사라지는 것일까? 無는 사라진다기보다 승화하는 것이다. 화백은 그 작품으로 평창올림픽 개최를 축하하고, 세계의 평화와 새로운 창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권정호 화백은 죽음의 과정과 순환의 의미를 닥종이 해골이라는 추상적인 매개체에 담아서, 예술의 본질적인 요소를 탐구하는 미니멀리즘을 뛰어넘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신표현주의를 지향한다. 화백의 작품 세계는 끊임없이 진화하며 또 다른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메이드 인 대구’라는 전시제명으로 대구미술관에서 대구 출신 작가 곽훈, 권정호, 김영진, 박두영, 박철호, 서옥순, 손광익, 최병소 8명의 작품을 전시한다. 거기서 화백은 3060개의 해골 형상으로 이루어지는 사각형 큐브 한 점과 작은 작품 네 점을 포함한 다섯 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전시할 주요 작품의 제목이 뭐예요?”

“언타이틀 - 무제.”

여백을 주고자 함인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낄 자유를 억압하지 않겠다는 의도일지도 모르고. 생각해보니 두개골과 매우 어울리는 제목이다. 카타콤이나 현대인의 정신적 무덤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 3060개의 해골이 만들어내는 미로를 상상해본다. 아무리 가도 똑같은 길이어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미로. 아리아드네는 미로에 들어가는 테세우스에게 실 뭉치를 준다. 테세우스는 그녀가 시킨 대로 문고리에 실을 묶어놓고 미궁에 들어가서 괴물을 처치하고 무사히 살아나온다. 사각형 큐브 속의 해골은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군상들일 수 있고, 해골 사이의 간격은 끊임없이 인간들을 헤매게 하는 생의 미로일지도 모른다.

권정호 화백은 해골 형상으로 사회현상을 다루는 작가다. 그는 대구에서 태어나 1960년대에 미대에 들어간 1세대이고, 세계적인 명문미술대학원에 입학한 유학 1세대이기도 하다. 백남준, 김구림, 전수천 작가를 비롯한 재미작가들과 전시회 활동을 함께 한 이력은 대구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메이드 인 대구’는 대구의 문화를 알리는 운동이다. 그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 ‘무제’는 지금 마무리 작업 중이다. 화백은 뉴욕 MONA PX1과 같이 작가들이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도움을 주는 큐비컬을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가창분교를 창작스튜디오로 만들었다. 화백은 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것 역시 작품 세계의 연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번 출품작 역시 화백이 꾸준히 지향해온 바와 같이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기대가 된다.

“왜 해골입니까?”

권 화백이 사람의 두개골에 관심을 가진 것은 고교시절부터이며, 영국의 설치미술가 데미안 허스트보다 훨씬 먼저라고 한다. 아버지가 대구역 부근에 있었던 칠성의원의 공의였고 형이 의대생이었다. 형이 두개골의 외형 조직과 짜임새, 구조를 배우려고 책상에 두개골을 갖다 놓았는데, 고교 2학년이었던 화백은 사람의 두개골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부정맥이 심해서 2군사령부까지 실려 가고, 폐렴으로 밀양 위양에서 요양을 하는 혹독한 과정을 겪으며 형이상학적인 죽음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두개골에 대한 충격이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이어지며, 식육점 진열장의 빨간 불처럼 해골에 대한 관심에 불이 켜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인으로 모델이 되었던 적이 있는 뉴욕 자연사박물관 뉴기니아관에서 화백은 인간의 뼈로 장식물을 만드는 뼈의 사용법을 배웠다. 해골을 작품화하는 것이 운명의 지침을 따르는 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두개골의 시작은 죽음의 의미였으나 작품 활동이 계속되며 해골의 의미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다. 화백은 해골을 죽은 시체로서의 해골로만 이해하기보다 멜랑콜리의 원리로 해석하길 바란다. 해골은 오브제이고, 대상이고, 자연이라고. 자연을 두고 다양하게 느끼고 다르게 보는 것이 바로 창의라고. 그렇듯이 두개골은 전달의 의미를 다양하게 표현하며 색다른 것을 보게 한다. 작가는 해골로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며 어떻게 새로운 걸 보고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멜랑콜리의 원리와 의미를 깨닫게 한다. 그릇이라는 의미로서의 해골을 어떻게 볼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작가는 해골로 사회현상을 보는데, 관객은 그것을 어떻게 보고 어떤 새로움으로 느낄지 묻게 된다.

화백에게 있어서 두개골은 시체로서의 물상이 아니라 이 세상의 문화를 발전시킨 인간의 두상이다. 해골은 단지 외형의 껍질일 뿐이다. 화백은 해골이라고 할 때가 있고, 두개골이라고 할 때가 있다. 두 가지의 의미가 다르다. 내용에 따라서 단어가 달라지는 문장의 구조와 같다. 두개골의 구조 조각 또한 내용에 따라서 단어가 달라지는 문장과 같다. 화백은 구조에 관한 분석철학을 곁들인다. 언어가 갖고 있는 의미가 문장 구조에 따라 변화하듯이 해골설치작업 역시 전달이라는 구조에 의거하여 사물을 다양하게 보는 것. 행위예술의 언어가 갖고 있는 의미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닐지.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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